◇ 일본공연
고용희는 1973년 7월30일 만수대예술단 일원으로 방일 때에 유일숙이란 예명을 썼다. 당시 20세를 갓 넘긴 젊은 나이였다.
7월30일 망경봉호를 타고 일본에 도착해 9월17일까지 각지에서 60여회의 공연을 했는데 팸플릿을 보면 예술단은 1969년에 김일성이 만들었고 단원은 304명. 일본 공연에는 무용부의 36명을 비롯해 220명이 참가했다. 공연 소식을 전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축쇄판을 보면 일본 연극 관계자와 친북인사들로부터 찬사가 쏟아졌고 무대에서는 반복해서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구호가 넘쳤다.
일본 공연 중에 ‘조국의 메아리’라는 조선무용 목록이 있었다. 주연은 유일숙. 조선신보 기자였던 조동현씨가 예술단을 밀착 취재했는데 그는 지금 우에노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 조씨는 “유일숙은 역시 예술단 중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였고 당연히 그녀에게 인터뷰하려 했죠. 그런데 근처로 가려하자 같은 예술단 여성들이 취재를 방해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이미 김정일과 관계가 있어 그녀 주변에는 친위대가 배치돼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연기는 평판을 받아 아사히 글러브 등 일반 잡지에도 크게 실렸다. 1973년 당시 조선신보는 한글판이었는데 유일숙의 이름을 찾아보면 9월3일자에 실려 있다. 기사 제목은 ‘수령님의 현명한 지도 아래 화려하게 꽃핀 주체예술 국립만수대예술단’이란 연재물. 일본공연 성공을 위해 김일성이 무용수들에게 최대한 배려를 했다며, ‘조국의 메아리’ 주인공을 맡은 유일숙의 소회가 실려 있다.
◇ 재일 코리언의 대우개선
2004년 유방암으로 사망하기까지 김정일과 동거했던 고용희의 존재는 공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소문만 무성했다. 고경택 일가는 장녀 덕분에 최고급 대우를 받게 된다. 경택은 딸과 김정일의 동거 이후 평양 만경대기념품공장 고문 지배인으로 생활이 순탄했고 1999년 86세로 사망했다.
일본에서 귀국선으로 건너온 북송동포의 대우도 1984년 무렵부터 서서히 개선돼 출세 기회도 생겼다.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건너왔고 지금은 일본에 귀화, 도쿄에 사는 가와사키 에이코는 “고용희가 북송동포를 위해 특별히 움직일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일반주민은 그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전해 듣지 못했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용희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어 서서히 북송동포 수용 범위가 넓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아유미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에 태어난 정철과 정은, 여정 가운데 정은이 권력의 자리에 오른 것은 2012년이다. 고경택 가족이 북한에 건너온 지 50년이 지났을 때다.
김정일의 전속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고용희를 1987년에 만났다. 용희는 ‘사모님’이라 불려 진짜 이름도, 재일조선인 출신이라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일은 대개 고용희를 동행시켰다.
후지모토의 저서에 따르면 김정일은 그녀를 일본식으로 아유미라 불렀다. 영화를 즐겨보는 김정일은 “일본에서 가장 예쁜 여배우는 요시나가 사유리고 용희는 요시나가와 비슷하다”며 “용희를 유명 여배우 하라 세츠코와 비슷한 청초하고 늠름한 미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일이 의견을 구하면 확실히 자기 생각을 드러내 북한의 중요한 정책에 그녀의 의견이 반영됐을 가능성도 있다.
후지모토에 따르면 몹시 취한 경호원이 김정일에게 총구를 겨눈 사건이 있었다. 그때 용희가 경호원을 덮쳐 목숨을 구했다는 얘기도 있다.
◇ 디즈니랜드 방문
고용희는 1991년 조총련 상공회 간부의 신원보증으로 일본에 정식 입국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직전 5월12일 당시 8세인 정은은 ‘조셉 박’이라는 브라질 여권으로 형 정철로 보이는 소년과 함께 일본에 입국했다. 비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취득한 것으로 돼 있다. 엄마와 아이들은 디즈니랜드에서 합류해 일본에서 휴일을 보낸 것 같다.
김정은은 지금 북한 내 여러 곳에 많은 오락시설을 짓고 있다. 유학했던 스위스를 본뜬 것이지만 어릴 때 엄마와 함께 다녀온 도쿄 디즈니랜드도 영향을 끼친 듯하다. 고용희가 찾아간 긴자·우에노 등에는 늘 조총련 관계자가 동행해 주위를 경호했다.
◇ 병증을 느끼다
아내 겸 비서였던 고용희가 1993년부터 파리에서 유방암 치료를 받았다. 김정일은 프랑스에서 투병하는 모습을 담은 편지를 받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수술은 성공해 고용희는 일단 귀국한다. 그러나 7년 후 12월 그녀는 뇌경색이 의심돼 특별기로 급히 프랑스로 떠났고 2004년 6월 조르주 퐁피두 유럽병원에서 사망했다. 김정일이 고려항공 특별기와 고급 관을 현지로 보내 시신을 수습해 평양에 안치했다.
김정일은 죽은 아내를 생각해 유방암 치료시설 확충에 신경을 썼다. 정은도 치료시설 건설현장에 현지지도를 나갔다. 부자의 각별한 독려 속에 유선종양연구소가 2012년 10월 평양산원 산하에 완성됐다.
고용희의 묘는 2012년 6월 평양시내에 설치됐다. 고용희의 묘비에는 그녀의 사진과 함께 ‘선군조선의 어머니 고용희. 1952년 6월 26일 출생, 2004년 5월 24일 사망’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고용희의 실명이 북한에서 이때 처음 공표됐다. 다만 그녀의 묘비 속 생몰은 세간에 알려진 것(1953.6.16~2004.8.13)과 달라 눈길을 끈다.
/고계연기자 kogy21@sedaily.com
-
[주] 최근 한반도 정세(외교 안보 등)를 좌지우지하는 핵심인물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당위원장이라 하겠다.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 그리고 섬뜩한 말 폭탄 주고받기로 긴장과 전쟁 위기감을 키우는 두 사람. 다소 진정국면이지만 여전히 ‘선전포고 주장’까지 나오는 일촉즉발 험악한 형국이다. 트럼프에 맞서는, 30대 초반의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미치광이인가? 전략가인가? 그의 성장 과정과 인성 등을 들여다보고 북한의 과거 현재 미래 전반을 분석·예측해보는 일본 언론인 고미요지(도쿄신문 편집위원)의 원고를 입수했다. 국내 판권을 가진 서교출판사 김정동 사장이 번역서 출간에 앞서 콘텐츠 사용에 대해 양해를 해줬다. 일부 수정을 거쳐 정기적으로 옮겨 싣는다.
* 고미 요지(五味 洋治) :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쥬니치신문 서울지국에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중국총국에서 근무하며 북한 뉴스를 쫓아왔다. 올 2월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과 7년 동안 주고받은 전자우편 대화록이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으로 지난 2013년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도쿄신문 편집위원으로 재직 중. 6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