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 성주로 가는 길에 하늘이 끄물끄물하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첫눈은 벌써 신고를 했지만 눈다운 눈은 성주에서 처음 맞았다. 바람 한점 없는 대기를 가르며 내리는 눈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내려오다 말다를 반복하며 공중을 떠돌았다. 첫눈은 반갑고도 아쉬웠다. 눈 내린 설경은 반가웠지만 눈이 내리는 도중에는 시계가 가려 풍경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씨는 내린 눈이 버틸 만큼 춥지도 않았다. ‘어제쯤 눈이 내린 후 맑게 갠 하늘에 추위가 맹위를 떨쳤더라면 훌륭한 설경을 렌즈에 담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성주는 대구 생활권이다. 적지 않은 주민들이 대구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대구의 위성도시쯤 되는 셈인데 도시화된 근처의 지자체들과는 달리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성주의 자연은 가야산 덕분이다. 가야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해인사를 떠올리고 합천에 있는 산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가야산은 성주군과 합천군에 걸쳐 있다. 게다가 대부분은 성주군 쪽에 포함돼 있다.
암반계류로 유명한 무흘구곡 역시 김천과 성주에 걸쳐 있다. 성주군에 무흘구곡(대가천 계곡) 중 1∼5곡이 있고 김천시에 있는 것은 6곡에서 9곡까지다. 하지만 무흘구곡은 김천을 취재하러 왔다가 일별했던 터라 오늘은 포천계곡으로 발길을 돌렸다.
포천계곡은 응와 이원조가 만귀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노년을 보냈던 곳이다. 그가 지은 시(詩) 중 포천구곡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계곡의 이름은 이 작품에서 차용한 것이다. 지금은 포천계곡이라 불리지만 계곡의 옛 이름은 화죽천이었다. 계곡은 폭이 좁은데다 암반으로 둘러싸여 무흘구곡보다 아름다운 편이다. 포천(布川)이라는 이름 중 베 포(布)자가 들어있는 것은 계곡의 모습이 삼베나 무명을 펼쳐놓은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다. 아홉 굽이 계곡은 하류의 1곡부터 만귀정 앞의 9곡까지 약 3.5㎞에 걸쳐 이어지는데 이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9곡에 해당하는 최상류의 만귀정이다. 만귀정 앞의 폭포수는 부챗살처럼 퍼지면서 아래로 떨어지는데 한여름에도 물에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차갑다. 계곡의 시원함에 대해서는 “여름에는 피서객들이 끌고 온 차로 통행이 힘들 정도”라는 것이 동행한 곽명창 해설사의 전언이다.
성주가 품고 있는 특이한 문화유산을 꼽으라면 세종대왕 태실을 빼놓을 수 없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한 후 떼어낸 탯줄을 봉안하는 곳으로 성주에는 월항면 인촌리의 세종대왕 태실과 가야산 북쪽의 가천면 법림산 단종 태실, 용암면 봉산의 태종 태실 등 세 곳의 태실지가 있다.
민간에서는 아기를 낳은 후 태를 땅에 묻거나 왕겨에 묻어 태운 뒤 재를 강물에 띄워 보냈다. 그러나 왕족의 경우에는 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명당에 안치했다. 이를 주관하는 태실도감에서 길지를 골라 의식과 절차를 거쳐 묻었다. 왕의 태실인 태봉(胎封)은 태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하면 격에 맞는 석물을 갖추고 비석을 세운 것을 말한다.
세종대왕 태실은 조선왕실 태실의 초기 형식으로 보기 드문 석실 형태다. 후기로 접어들면서 태실들이 묘지 형식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태를 보관한 태실의 주인 중 왕이 나오면 태실은 다시 설치되고 이름도 태봉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세종대왕 태실은 사적 444호로 1438년 세종 20년부터 4년간에 걸쳐 조성됐다. 세종대왕의 적서(嫡庶) 19왕자 중 문종을 제외한 18왕자의 태실 18기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는 단종의 태실도 있었으나 세자로 책봉된 후 성주 법림산으로 옮겨졌다. 김경란 성주군 관광정책담당은 “이곳의 기를 받아 아이를 갖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간단없이 이어지고 있다”며 “성주에 왔으니 태실은 꼭 들러보고 가라”고 권했다.
한개마을은 성산 이씨들의 집성촌으로 이곳에 이씨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세종 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李友)가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다. 한개라는 이름은 이곳에 나루터와 개울이 있어 붙은 이름으로 ‘한’은 ‘크다’는 뜻이며 ‘개’는 개울 혹은 나루를 의미한다. 집마다 안채와 사랑채·부속채 등 지형 특성에 따라 배치돼 구조가 다양하며 지붕·대청·안방·부엌·툇마루 등이 잘 보존돼 전국에서 여섯번째의 전통민속마을로 지정된 바 있다. 한주종택 등 민속문화재급의 고택들이 75채 남아 있다. /글·사진(성주)=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