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슈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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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미국에서 수십 장의 결혼식 초대장이 중국과 캐나다 등으로 날아갔다. 한 쌍의 미국 남녀가 뉴저지 케이프메이에 정박한 요트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결혼식은 미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국토안보부 등이 위조지폐 등을 유통하는 국제범죄조직원들을 소탕하기 위해 만든 커다란 그물이었다. 작전명은 요트 이름을 딴 ‘로열 참(Operation Royal Charm)’.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스모킹 드래곤(Operation Smoking Dragon)’이라는 작전이 진행됐다. 작전 결과 그물에 걸려들어 기소된 인원이 무려 87명이나 됐다. 압수된 물품 중에는 진짜와 구분하기 힘든 320만달러 규모의 100달러짜리 위조지폐(일명 ‘슈퍼노트’)도 포함돼 있었다. 범죄조직에 의한 슈퍼노트의 조직적 유통 증거가 확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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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멕시코의 아즈텍족은 카카오 콩을 화폐로 사용했지만 생산량이 적을 땐 진흙으로 만든 가짜 카카오 콩을 진짜와 섞어 유통하기도 했다. 얼마나 정교했는지 먹어보지 않고는 진짜와 구분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진흙 카카오 콩이 슈퍼노트였던 셈이다. 국가가 직접 나서면 정교함은 더 높아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는 5·10·20·50파운드 네 종류의 위조화폐를 찍었다. 처음에는 영국 경제를 교란할 목적이었지만 나중에는 정보 부서의 공작자금이나 물품 구입 대금으로 쓰였다. 위폐의 정교함은 극에 달했다. 최상급은 워터마크도 완벽했고 석영 램프 불빛에 비춰도 색깔이 달라져 보이는 문제도 해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파운드가 무려 총 1억3,000만파운드나 풀렸다. 영국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KEB하나은행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한 번도 신고된 적 없는 신종 초정밀 100달러짜리 슈퍼노트 한 장을 국내에서 처음 발견했다. 이 슈퍼노트는 2006년 판으로 1996년이나 2001년, 2003년 판보다 숫자 모양과 얼굴 도안이 더 정교해졌고 숨겨진 그림도 거의 완벽하게 재현됐다. 위조지폐의 위험이 커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에게 전가된다. 위폐범과 이를 적발하기 위한 금융당국 간의 숨바꼭질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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