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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위 매의 눈 'AI 심판'…동작 하나하나 다 본다

FIG-후지쓰 'AI 채점 프로젝트'

2020 도쿄 올림픽 체조에 도입

선수들 연기 3D로 포착·분석

'양태영 오심' 더는 없을 듯

일각선 "사이버 보안 우려"

후지쓰가 개발 중인 AI 기반 체조 채점 시스템. /사진출처=FIG후지쓰가 개발 중인 AI 기반 체조 채점 시스템. /사진출처=FIG




인공지능(AI)이 스포츠에서 인간의 행동을 채점하는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체조 종목에서는 AI가 선수 채점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인터넷판을 통해 “연기를 마치자마자 기다릴 필요도 없이 점수가 스크린에 뜨고 선수는 로봇 심판에게 인사하는 장면을 (SF영화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아닌 현실에서 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국제체조연맹(FIG)은 올해 일본 정보기술(IT) 기업 후지쓰와 손잡고 ‘AI 채점 지원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도쿄올림픽에서 정식 적용하는 게 목표. 현재 FIG 회장이 다름 아닌 일본인이다. 일본체조협회 전무 출신의 와타나베 모리나리는 올 1월 FIG 회장에 취임해 AI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 기계체조 4관왕을 차지한 시몬 바일스(미국).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 기계체조 4관왕을 차지한 시몬 바일스(미국).


스포츠에서 ‘기계의 영역’이 확산하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테니스 경기 중 인·아웃을 가려내는 ‘호크아이’도 AI의 일종이다. 야구와 축구에서는 비디오 판독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래도 기계는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에 머물렀다. 체조는 이 같은 경계를 넘어 AI에 심판과 사실상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려 하고 있다. 오심의 여지를 제로에 가깝게 줄이는 한편 채점 속도를 높여 선수와 관중에게 실시간 점수 확인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 남자 기계체조의 양태영은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인종합 경기에서 심판의 오심에 큰 피해를 봤는데 AI 채점이 도입된다면 적어도 이런 오심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시 심판은 평행봉에서 양태영의 스타트 점수를 10점이 아닌 9.9점으로 잘못 채점했고 그 결과 양태영은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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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쓰는 FIG와의 협약에 앞서 지난해부터 체조 채점 지원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각 종목에 10대 이상의 동작측정 카메라를 배치해 선수들의 연기를 3D 입체영상으로 담아낼 계획. 이를 위해 3D 레이저 센서를 탑재한 로봇을 개발 중이다. 이미 실제 대회 중 시연회도 마쳤고 내년 10월 세계선수권에서는 정식 테스트에 들어간다. 브루노 그란디 FIG 명예회장은 “심판은 하루 8시간을 일해야 한다. 집중력 문제도 있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시종 일관되게 채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컴퓨터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FIG와 후지쓰는 AI 채점 도입에 대해 “심판진의 보다 정확한 채점을 도와주는 역할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채점 지원 시스템은 3D 레이저 센서가 포착한 세분화한 동작과 이를 분석한 수치를 실시간으로 심판진에게 제공한다. 심판진은 그에 맞춰 점수만 주면 된다. 그러나 후지쓰 홍보영상을 보면 선수가 착지하는 순간 점수가 TV 화면에까지 뜬다. 궁극적으로는 심판의 역할을 생략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밀하게 분석된 자료를 룰과 비교해 곧바로 점수화하는 것은 AI에는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이 때문에 결국은 AI가 심판을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올림픽 10점 만점의 신화로 유명한 ‘왕년의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는 이에 대해 “AI 알고리즘에 등록되지 않은 동작을 선수가 구사했을 때 어떻게 점수를 줄 것이냐”고 반문했다. 해커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우려 등 사이버 보안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체조는 난도와 예술성(연기)을 함께 평가하는 종목이다. 주관적 판정의 여지가 있었던 예술성 평가마저 AI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피겨 스케이팅 같은 종목에도 AI 채점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 일본은 도쿄올림픽 기간 올림픽선수촌이 들어선 오다이바 지역에 아예 ‘로봇촌’을 건설할 예정이다. 로봇이 선수와 관광객의 거의 모든 것을 돕게 한다는 계획이다. 한국도 평창올림픽에 85대의 자원봉사 로봇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스포츠 무대가 4차 산업혁명의 시험장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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