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CEO&STORY] 유석환 로킷 대표 "바이오3D프린터 활용, 환자 세포로 장기 만들겠다"

의대 교수로 있는 친구 연구실서

바이오3D프린터 가능성에 눈떠

2014년 세포 생존율 높인 기기 개발

美·유럽·日 등 10여개국에 수출도

대우차 COO·美 타이코 아태총괄

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 등 경력 화려

내년부터 뼈·피부 제조 체계 갖춰

늦어도 2년 후엔 각막 재생 목표

유석환 로킷 대표가 바이오 3D프린터 인비보로 만든 인공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은석기자유석환 로킷 대표가 바이오 3D프린터 인비보로 만든 인공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수술법과 약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암을 비롯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은 무수히 많다. 아프리카·중남미·동남아시아 등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저개발국이나 저소득층 역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1조~10조원이 들고 성공확률도 1%에 불과해 치료약이 없는 분야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오 3D프린터’를 통해 각 인종과 민족에 맞춰 현지에서 환자의 세포를 배양해 약도 개발하고 피부와 뼈·인공장기를 만들어 치료하면 어떨까. 자연스레 질병치료 효과는 높아지고 비용부담은 크게 낮아지게 될 것이다.


이처럼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세상을 꿈꾸는 이가 있다. 바이오 3D프린터 기업인 로킷(ROKIT)의 유석환(60·사진) 대표다. 최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본사에서 3시간가량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유 대표는 “바이오 3D프린터를 활용한 의료 플랫폼을 만들어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 각자 현지화된 약과 치료를 받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 로킷의 바이오 3D프린터 ‘인비보(INVIVO)’가 세포배양 등 다양한 실험을 하는 것을 보니 단순히 몽상이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인비보는 현재 국내·외 연구소와 대학병원·제약사·화장품회사 등에서 특정 조건을 갖춘 세포를 배양하고 약품을 투여해 효과를 측정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신약이나 복제약 실험 과정에서도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 인비보는 외국산에 비해 효과는 우수하면서도 가격은 20%에 불과해 인기가 높다.

“세계적으로 바이오 3D프린터를 활용해 자신의 세포로 피부를 만들어 적용하는 것이 현실화되고 있지요. 인공장기도 심장은 위험해 돼지에게만 적용되는 단계지만 눈은 장님 토끼에 광명을 찾아줬고 사람에게도 4~5명 임상실험에 성공했는데 1~2년 내 시각장애인에게 실제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도 상용화 전 단계이고요. 이런 식으로 바이오 3D프린터의 용도가 다양해지고 있는데 ‘바이오 3D프린터 의료 플랫폼’을 통해 각 나라에서 환자의 세포로 피부와 뼈·인공장기까지 만들도록 하는 체제를 갖추려고 합니다.”

이처럼 유엔 차원에서나 추진해봄 직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유 대표는 어떤 인물일까.

“1919년생인 아버지는 신의주 출신으로 동경제대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한 지주의 아들이었죠. 숙청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농지개혁 때 엔지니어가 필요해 몇 년 더 계시다가 6·25 전 할아버지 모시고 삼촌들이랑 월남하셨어요. 할머니와 고모들은 남아 이산가족이 됐죠. ‘혼란한 시대에 지식과 건강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의 부친은 조선토목공사 수석부사장을 지냈고 이후 여러 건설회사에서 최고경영자(CEO)도 맡았다. 당시는 조선토목공사 출신이 현대건설·동아건설·대림산업 등 건설 1세대의 중추로 자리 잡던 시절이었다.


유 대표는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엔지니어가 돼야 한다”는 부친의 권유로 고려대 산업공학과에 들어간다. 1979년 고성장기를 구가하던 대우차에 입사했는데 마지막 7~8년은 세계경영의 보루로 직원이 2만명인 대우차 유럽본부(폴란드법인)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를 했다. 한국에서 동반 진출한 부품회사도 40여개를 같이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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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떨어져 세계경영을 많이 연구했죠. 당시 폴란드가 공산주의라 규율과 시스템이 독특했는데 자재가 없어도 맘대로 만든 뒤 소비자보고 가지고 가라고 할 정도였어요.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려워 부평공장에 6,000명을 보내 의식개혁도 하고 시스템도 바꿨죠. 자재는 유럽에서 샀는데 현지인들과 일하며 다양성을 배웠습니다. 독일은 굉장히 터프한테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고 이탈리아 사람은 휴가 때 연락이 잘 안 되는데 기분 좋게 하면 술술 잘 풀리며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하지만 정작 신사는 없더라고요(웃음).”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맞아 대우그룹이 공중 분해되면서 대우차도 채권단으로 넘어갔다가 GM에 팔리자 전직을 결심한다.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회사라 창의력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봐서다. 2001년 미국 글로벌 보안기업 타이코로 전직해 한국 사장을 맡다가 아태 총괄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호주·뉴질랜드·중국·일본·싱가포르 등을 다루는데 대우차 폴란드공장에서 COO를 지낸 게 많은 도움이 됐지요. 나라마다 카멜레온처럼 대처해야 돌아갔는데 나중에는 백인이 아니면 아태사장을 하기 힘든 유리천장이 느껴져 깊은 회의감이 들기도 했죠. 마침 타이코가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을 많이 하며 ‘한국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라’고 지시하자 이를 거부해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됐어요. 제 덕에 지금도 공장이 한국에 있다니까요(웃음).”

이때 대우 출신들이 만든 셀트리온에서 글로벌 임상판매를 담당하는 셀트리온헬스케어를 창립해 2007년에 CEO(최고경영자)를 맡아달라고 요청한다. 유 대표는 폴란드로 발령받을 당시 한국생산성본부에 근무하던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을 대우차 고문으로 추천하고 팀까지 내준 끈끈한 인연이 있었다.

“요즘 셀트리온그룹 시총이 40조원대나 되지만 당시 셀트리온헬스케어는 빚만 1,300억원을 지고 있었죠. 남의 약을 생산하거나 바이오시밀러(의약품 복제약)를 개발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초기에는 병행하다 바이오시밀러로 밀고 나갔죠. 선판매로 7,500억원을 받아 셀트리온에 오더를 줘 살아남았어요. 당시 많은 사람이 ‘바이오시밀러 규정이 없고 3~4년 기다려야 하는데 허가받을 가능성이 없고 설령 승인받아도 팔기 힘드니 망한다’고 했을 때였어요.” 당시 그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스웨덴 제약담당에게 ‘30~40% 싸게 바이오시밀러를 만들어 유럽 허가를 받으면 사겠냐’고 하니 그가 OK라며 “평균수명은 늘지만 세금은 감소하는 추세에서 고가 약을 싸게 주면 몇천억원이 절감되는 데 왜 안 사느냐”고 말해 확신을 갖게 됐다고 술회했다.

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에 전념하던 그는 2012년께 건강이 악화돼 1년간 등산에 푹 빠진다. 2013년부터는 대학에 출강하며 실력 있는 학생들도 취직이 안 되는 것을 보고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대량생산 체제는 이제 저임금국과 경쟁이 안 되니 다품종 소량생산을 위한 3D프린터가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마침 의대 교수로 있는 친구 연구실에서 바이오 3D프린터가 비싸 못 사는 것을 보고 사명감이 느껴졌습니다.” 그전에도 3D프린터의 잠재력을 보고 2012년 500만원을 들여 사무실도 없이 심심풀이로 3D프린터를 만들었지만 이때부터 ‘노령화 시대 맞춤의료 시대가 펼쳐지겠구나’라는 확신을 갖고 진지하게 바이오 3D프린터 개발에 박차를 가해 2014년 인비보를 내놓는다.

그는 “처음에는 컴퓨터 부품이나 플라스틱 등 범용 3D프린터(에디슨)가 주력이었으나 대당 3억~5억원짜리 독일 바이오 프린터를 연구하되 독창적으로 멸균·공기정화 환경을 구축해 세포 생존율을 높인 바이오 3D프린터를 개발했다”며 “서울대병원이나 KIST·한국기계연구원 등과 오픈이노베이션 체제를 구축해 바이오잉크와 인공뼈 등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모든 소재를 모두 다 출력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출력방법을 광중합방식 등 6가지로 늘리고 모바일기기로도 제어가 가능하게 한 것도 특징이다. 그는 “국내 병원이나 연구소는 물론 유럽과 미국·일본 등 10여개국에 샘플을 수출하는 등 200대 정도를 팔았고 어느새 투자도 100억원가량 받았다”며 “올해 매출은 90억원가량 되는데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와 미국 하버드대 메디컬센터와도 연구개발(R&D) 제휴를 맺은 것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 대표는 “이제는 바이오 3D프린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고 인공장기나 약을 각각의 나라에서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팔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한국이 공급하는 재료와 플랫폼으로 피부와 뼈·각막·심장을 만드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내년부터 뼈와 피부는 우리 플랫폼으로 만들 수 있는 체제를 갖추려 한다”며 “내년 말이나 2019년에는 각막을 재생해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유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바이오·생명과학인데 이렇게 영업비밀을 털어놓아도 될지 모르겠다”며 “의료 플랫폼을 각 나라에 줘 그쪽의 세포를 가지고 각막 등을 만들도록 하면 재료와 바이오 3D프린터도 팔고 로열티도 받게 될 것”이라면서 활짝 웃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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