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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G-50]김보름 "매스스타트는 구세주, 놀 때도 평창만 생각해요"

빙속 뒤늦게 입문한 '보통 선수'

평창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우뚝

빙상인생 고비마다 과감한 선택

"꿈나무들에 롤모델 되고 싶어요"

김보름김보름


‘주저앉는 것은 다시 일어서기 위함이다.’

스피드스케이팅(빙속) 여자 매스스타트 국가대표 김보름(24·강원도청)은 오른 팔뚝에 이 같은 뜻의 라틴어 문구를 문신으로 새겼다. 20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한 그는 “쇼트트랙을 할 때도 늘 고민이 많았고 빙속으로 종목을 전향하면서도 고민이 많았는데 팔에 새긴 이 문구를 항상 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김보름은 요즘 태릉선수촌에서 하루 7시간30분씩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오전7시에 일어나 4시간30분간 훈련하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6시까지 또 3시간 동안 얼음을 지친다. 하루 훈련을 마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녹초가 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또 번쩍 눈이 뜨인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시상대에 오르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김보름은 집단 출발 방식의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지난 시즌 세계랭킹 1위에 오른 평창올림픽 금메달 후보다. 지난 2014 소치올림픽 여자 3,000m를 이 종목 역대 한국 선수 최고 순위인 14위로 마친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빙속 흥행을 위해 2014년 도입한 매스스타트 종목에 거침없이 도전해 세계 1위를 찍은 것이다.

김보름이 오른팔에 새긴 문신. 앞길이 막막할 때마다 김보름은 오른팔의 이 문구를 보며 새 힘을 찾았다고 한다.     /사진제공=김보름김보름이 오른팔에 새긴 문신. 앞길이 막막할 때마다 김보름은 오른팔의 이 문구를 보며 새 힘을 찾았다고 한다. /사진제공=김보름



사실 김보름은 올림픽 금메달은 꿈도 못 꾸던 그저 그런 선수였다. 스무 살 무렵까지도 그랬다. 남들보다 5~6년 늦은 초등학교 5학년에야 쇼트트랙에 입문한 그는 또래 친구들을 따라가기도 버거웠다. 빙상 인생의 첫 번째 갈림길은 고3 진학 때 찾아왔다. 운동을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공부에 대한 준비도 돼 있지 않아 막막하던 시기였다. 그때 그의 가슴에 불꽃을 일으킨 것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이었다. 김보름은 “빙속 남자 1만m에서 이승훈 선배님이 금메달을 따는 것을 TV로 보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고 돌아봤다. 평창올림픽 남자 매스스타트 금메달 후보인 이승훈은 김보름의 둘도 없는 멘토가 됐다. 김보름은 “이승훈 선배님의 레이스 영상을 많이 참고하고 있고 순간적인 대처에 대한 조언도 수시로 듣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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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름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밴쿠버올림픽 3개월 뒤 쇼트트랙에서 빙속으로 전향했다. 쇼트트랙도 늦었고 빙속도 늦은 셈이었지만 그 때문에 김보름은 더 죽기 살기로 스케이트를 탔다. 스케이트화는 물론 훈련방법과 경기운영까지 쇼트트랙과 완전히 다른 빙속임에도 그는 빠르게 적응했다. 김보름은 빙속 훈련이 가능한 대형 빙상장(빙속은 400m, 쇼트트랙은 111.12m 트랙을 사용한다.)을 찾아 대구에서 홀로 서울로 올라왔고 고3 때부터 지금까지 혼자서 생활하고 있다. 대구에 내려가는 것은 1년에 세 번 정도라고. 그는 “낯선 곳에 혼자 적응하는 게 힘들고 외로웠지만 운동선수로서 목표에만 집중하면서 잘 이겨낸 것 같다”고 돌아봤다.

2011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딴 김보름이지만 여전히 올림픽 메달의 꿈은 멀어 보였다. 그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매스스타트였다. 최대 24명이 레인 구분 없이 출발해 400m 트랙을 16바퀴 도는 레이스. 4·8·12바퀴째 1~3위에 5·3·1점을 주고 최종 1~3위에 60·40·20점을 주는 방식이다. 장거리 빙속과 쇼트트랙을 결합한 종목으로 2015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평창이 올림픽 데뷔 무대다. 김보름은 “제가 가진 장점들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종목”이라며 “매스스타트는 제게 구세주와도 같다”고 했다.

새로 생긴 종목인 만큼 시간이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김보름은 2월 강릉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이후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의 치밀한 작전에 밀려 3위를 했다. 평창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1~4차 월드컵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1차 대회 중 다른 선수들과 엉켜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쳤고 2차 대회 불참 뒤 3차에서는 11위까지 떨어졌다. 자칫하면 올림픽 출전권을 놓칠지도 모를 상황. 김보름은 그러나 10일 4차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티켓을 손에 넣었다. 벼랑에 몰릴 때마다 과감한 선택으로 스스로 길을 열어온 그는 운명의 4차 월드컵에 오히려 편안하게 임했다고 한다. “허리 통증이 여전했지만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그저 연습한 대로 탔더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허리 재활과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는 김보름은 ‘전략’과 ‘순간 스피드’를 강조했다. “저는 항상 막판 스퍼트로 순위권에 들고는 했는데 다른 나라 선수들은 요즘 일찍 치고 나가는 변칙 전략을 쓰더라고요. 경쟁팀 선수들의 강·약점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전략을 잘 세워서 올림픽에 나가야 합니다. 팀플레이를 펼치기 위해 저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선수 2명이 결선에 같이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고요.” 김보름은 직선주로에서의 순간 스피드 향상을 위해 500m를 전력 질주하는 훈련에도 땀을 쏟고 있다.

노란색 머리는 평창올림픽까지는 유지할 예정. 기분전환으로 염색한 건데 이후 금메달을 많이 따면서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됐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인 외출 때도 오로지 올림픽만 생각한다는 김보름. 그는 “훗날 스포츠 팬분들이 김보름이라는 선수를 기억할 때 매 순간 모든 것을 쏟아붓고 승부를 즐긴 선수로 떠올려주면 좋겠다. 꿈나무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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