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아직도 시간은 있다

정상범 논설위원

불확실성 시대, 리스크 관리 절실

경제 살리기는 끈기·담력 싸움

'복지서 고용으로' 정책 바꾸고

왕성한 시장 메커니즘 살려야





연말이면 세계 각국에서는 한 해를 상징하는 단어를 선정해 과거를 되돌아보고는 한다. 우리는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됐고 중국에서는 ‘초심(初心)’이 뽑혔다. 눈길을 끈 것은 대만에서 내놓은 ‘아득할 망(茫)’이다. 망망대해에 갇힌 것처럼 어둑어둑해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외신들은 “뚜렷한 방향 없이 서로 다른 의견만 충돌해 망연(茫然)했다”며 추천 배경을 전하고 있다. 대만과 중국의 양안 관계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대기 오염, 노사 갈등, 대정전 사태 등 대만의 복잡한 사회구조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꽉 막힌 남북관계나 국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가득한 현실을 떠올리면 우리네 심정과 엇비슷한 처지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우리는 연초의 어수선했던 분위기에 비해 안정을 되찾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인다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경제가 좋아지면서 국민들의 자신감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무술년 새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세계 무역환경이 올해보다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 새로운 정책 실험이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도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한껏 고대했던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있지만 정부와 국민이 따로 논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내년이 더욱 두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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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 1998년 선거를 앞두고 각계 인사들에게 26통의 편지를 보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때로는 원망하고 격려하면서 자신의 정책 구상과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가 일관되게 지향했던 바는 ‘함께 열어가는 미래’였다. 사람 중심의 경제를 앞세워 인간의 얼굴을 갖춘 자본주의를 만들겠다며 아직도 시간은 있다고 설파했다. 사실 그가 집권한 시기는 최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년간 집권한 보수정권을 이어받은 소수정권인데다 통일에 따른 국론 분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한때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던 독일 제조업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치열한 논쟁을 거쳐 독일 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키우겠다며 사회보장제도를 뜯어고치고 노동시장 개혁을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녹색당을 비롯해 지지층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오직 국익만을 바라보고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 데 매달렸다. 집권 2년 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2018년은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을 맞아 대한민국은 혁신과 변화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경제 회복의 최우선 과제는 창조적 파괴로 일컬어지는 기업가 정신의 회복에 맞춰져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과감한 투자와 선제적 대응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어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번에 선진국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산업 전반의 급속한 쇠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왕성한 시장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먼저 확실한 시그널을 줘야만 경제주체들도 마음 놓고 투자하고 소비할 자세를 갖추게 마련이다. 슈뢰더는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정치적 해결모델이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경제 살리기는 바로 끈기와 담력의 기나긴 싸움이다.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면 복지에서 고용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고 기업과 정부가 함께 뛰어야 한다. 새 정부는 출범 초기인 내년을 놓치지 말고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과감한 대책을 마련해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의욕에 불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만 산업현장마다 혁신이 피어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탄생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시간은 남아 있다. ssang@sedaily.com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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