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데이터 혁명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데이터 활용은 금기사항이다. 결과적으로 빅데이터가 부재해 인공지능 기반 신산업들은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 금융·교육·보건·유통·에너지 분야 등의 데이터 활용은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목으로 실질적으로 금지돼 있다. 오프라인의 쇄국주의로 당한 19세기 대한제국 국치의 수모가 이제 온라인의 데이터 쇄국주의로 재연될 우려가 너무나 크다.
모든 국가가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한국은 가장 많은 4차 산업혁명 구호를 외치고 있으나 데이터와 클라우드 규제로 실질 구현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10% 이하의 클라우드 활용 비중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발족하고 11월30일자로 추진방안이 발표됐으나 4차 산업혁명의 빗장을 푸는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현실과 가상이 데이터로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현상으로 간주된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세계 최고 속도인 한국의 초고령화가 지금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골든타임이라고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
정책적 문제는 개인정보·공공정보와 클라우드의 세 가지인데 이 중 개인정보 규제부터 정리해보자.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식별화 정보 활용 규제다.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비식별화 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면 빅데이터 구축이 좌초돼 4차 산업혁명은 시작부터 불가능하다. 비식별화란 개인정보의 일부를 삭제하거나 대체해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한 기술적 조치다. 그런데 한국에서 비식별화는 법적 정의가 없다. 그나마 행정 가이드라인에 따라 재식별화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막연한 수준으로 규제되고 있다. 기술의 무한한 발달을 상정해볼 때 영원히 재식별화가 불가능한 비식별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현 규제 가이드라인 아래의 비식별화는 4차 산업혁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예컨대 한국이 보유한 막대한 의료보험 정보를 활용한 최적화된 지역 건강관리와 질병별 보험 개발 등의 가능성을 봉쇄해버린 것이다. 최근 8대 신산업 연구 발표자들은 모두 비식별화 규제로 인한 사업화의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세계적 추세는 비식별화가 아니라 재식별화 규제다. 일본에 이어 개인정보에 대해 가장 보수적이었던 유럽도 비식별화가 아니라 재식별화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발전, 개인정보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의 균형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해결책이 바로 비식별화의 명확화와 재식별화의 강력한 규제인 것이다. 특히 법적으로 불명확한 가이드라인으로 규제된 비식별화 기준을 이제 일본·유럽과 같이 법적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일본은 단순대조로 식별되지 않는 익명화로 데이터 활용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한국도 비식별화는 일본과 같이 익명화를 기준으로 정의하고 재식별을 규제하면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의 균형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식별화 개인정보 규제를 살펴보자. 미국의 경우 개인정보의 통제권은 개인에게 주어지고 사후 오남용에 대해 징벌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개인정보는 개인의 자산이 되고 있다. 개인 자산인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은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식별화 개인정보 활용을 통해 개인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유럽이나 일본처럼 개인정보 수집은 사전 규제하는 옵트인(opt-in) 방식을 따르더라도 수집된 개인정보의 통제권은 개인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일본이 대기업의 데이터 집중을 견제하기 위해 개인정보 이전 권리를 개인에게 보장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의 통제와 활용 간 균형은 어렵지 않다. 비식별화 규제에서 재식별화 규제로 전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