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공터에서 하늘을 보다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김훈 작가의 소설 ‘공터에서’를 읽었다. 여러 군데로 나뉜 삶의 터전을 떠올린다. 쉼터·배움터·일터·싸움터·놀이터, 이렇게 다섯이다. 가정은 쉼터, 학교는 배움터, 직장은 일터, 군대는 싸움터다. 놀이터는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극장이나 공연장이, 누군가에게는 게임방이나 운동장이 놀이터다.

이 다섯 장소는 종종 영역이 겹친다. 특히 싸움터가 그렇다. 사이가 틀어진 가족에게는 쉼터가 싸움터다. 국회는 언제부터인가 일터이자 싸움터가 됐다.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다 보니 즐거워야 할 교실조차도 싸움터로 바뀌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일터가 놀이터다. 연기가 즐거운 배우에게 무대는 일터이자 놀이터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을 벌이던 곳은 일터·놀이터·배움터·싸움터가 겹치는 곳으로 보였다.


살면서 여러 터전을 거치고 또 머물렀지만 ‘공터’의 기억은 거의 없다. 문득 기억이 지난 1970년대 초동 스카라극장 맞은편으로 향한다. 거기에 자주 다니던 맥줏집이 있었다. 이름이 글레이드였다. ‘숲속의 빈터’라는 뜻이다. 이름은 공터지만 그곳은 내게 쉼터이자 놀이터, 그리고 배움터였다. 거기에는 술이 있고 음악이 있고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과 많이 대화하고 토론도 했다. 언젠가 그 숲속의 빈터에 새 건물이 들어섰을 때 청춘의 버팀목이 힘없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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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는 옥상정원이 있다. 거기에서는 완전히 드넓은 하늘을 볼 수 있다. 하늘을 볼 때면 대학교 4학년 때 모교에 교육 실습을 나갔을 적이 떠오른다. 국어 수업을 맡았는데 그때 가르친 수필 제목이 ‘신록예찬’이다. 글을 쓴 이양하 선생의 문장이 아름다워 지금도 줄줄 외고 있다. “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칠정(五欲七情)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마음에 영일(寧日, 편안한 날)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내가 다니는 직장은 계단마다 공연·전시·축제·포럼을 알리는 포스터가 훈장처럼 붙어 있다. 사무실마다 문화예술 서적들이 꽉 차 있다. 층마다 별책부록처럼 꾸며진 작은 사랑방에서는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하루에도 서너 번 그곳들을 기웃거리며 작은 시비(?)를 거는 것이 소박한 즐거움이다.

출근할 때는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오른다. 마침내 사무실이 있는 5층에 이르면 입구의 세 글자가 한눈에 들어온다. 감사팀. 나는 그것을 ‘감시와 사찰’이 아니라 ‘감사’로 읽는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아무도 막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이제 한 층만 더 올라가면 공터와 하늘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는 혜택에 오늘도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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