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부스터는 데이터에 기반해 맞춤형 여성 속옷을 제작하는 스타트업이다. 속옷 업계에 등장한 낯선 이 스타트업이 창업 1년 만에 기성 브랜드를 위협하는 대항마로 급부상하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속옷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야심 찬 목표로 창업에 나선 박수영 소울부스터 대표를 만나 봤다.
어느 누구도 (적어도 지금까진) 혁신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이 있다. 바로 속옷시장이다. 지금까지 속옷업계에선 눈에 띌 만한 혁신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재질을 바꾸고, 디자인을 교체하고, 형태에 변화를 준 제품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이를 속옷업계의 ‘혁신’이라고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여전히 우리가 입는 속옷은 30년 전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속옷의 혁신’을 기치를 들고 나온 소울부스터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 십 년 동안 고착된 속옷시장, 그리고 여성들의 속옷 스타일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기자 역시 처음 소울부스터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같은 그런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2017년 12월 중순, 오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 삼성동 인근 소울부스터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만난 박수영 소울부스터 대표는 대뜸 기자에게 낯익은 의류 브랜드 이름 서 너 개를 언급했다. 그리고 물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방금 제가 언급했던 브랜드 옷을 입어보신 적 있으세요?” 기억을 더듬을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매장조차 찾기 힘든 브랜드였다. 그러나 그 브랜드들은 약 20여 년 전, 기자가 중·고등학교 재학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들이었다. 바지 제품의 경우, 특유의 통 넓은 힙합스타일 탓에 전국의 길거리를 빗자루처럼 쓸고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박 대표가 빙긋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방금 언급했던 브랜드 사례처럼 유행은 돌고 돕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다면, 시장에서 사라지는 브랜드도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여성 속옷시장은 이러한 흐름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엄마와 딸이 입는 속옷 브랜드가 여전히 같아요. 할머니와 손녀가 입는 브랜드도 같을 수 있고요. 그저 디자인, 사이즈에 차이가 있을 뿐, 항상 똑같은 스타일의 제품들만 수십 년째 시장에 나오고 있어요. 저는 이건 정상적인 흐름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시장은 무려 1조 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혁신은 여전히 없어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울부스터가 지금까지 없었던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원래 잘 나가던 회계사였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기 전 이미 CPA에 합격해 일찌감치 회계사로 진로를 잡았다. 졸업 후에는 ‘순리대로’ 삼일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에서 약 2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박 대표의 마음속 한켠에는 ‘창업’에 대한 욕망이 남아 있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가정환경이 알게 모르게 창업에 대한 생각을 심어준 게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박수영 대표의 어머님은 20여 년 간 강원도 지역에서 제법 큰 규모의 의류 유통사업을 운영했다). 박 대표는 일단 부딪쳐보자고 결심을 했다. 그리고 2015년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가 생각해오던 ‘자동 기장 프로그램’ 개발이 사업 아이템이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의 쓴잔을 마셨다. 금전적 손실도 발생했다. 그러나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며 ‘쿨 하게’ 실패를 인정했다.
실패를 곱씹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박수영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의류, 그 중에서도 여성 속옷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박 대표의 어머니는 오랜 기간 의류업계에 종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박 대표 역시 대학 시절, 의류유통 대리점 중 한 곳을 운영해 매출을 끌어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의류사업은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 박 대표는 과거 의류사업을 할 때 느꼈던 자신만의 노하우를 떠올렸다. 박 대표는 말한다. “여성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자신의 체형에 맞는 속옷(브래지어)를 입었는지 쉽게 알아채는 능력이 생겼어요. 맞지 않는 속옷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것이 마치 당연한 일인 듯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상당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고, 좀 더 편안한 속옷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속옷은 단순한 ‘옷 안에 입는 기본 아이템’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어요. 제대로 된 속옷 하나가 체형을 바꿔주고, 나아가 패션과 맵시를 한껏 살려줄 수 있으니까요.”
마침내 지난 2016년 소울부스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울부스터는 맞춤형 속옷을 선보인다. 여기서 맞춤형이란 단순히 고객의 ‘사이즈’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체형, 가슴 형태 유형을 분석해 몸매와 옷핏까지 보정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박수영 대표는 말한다. “기성 브랜드는 각 연령대 표준 체형의 여성 1~2명을 선별해 그들의 몸을 기준으로 속옷을 대량생산해 찍어냅니다. 그런데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여성들의 가슴 형태가 약 30~40여 가지에 달하더군요. 이는 기준이 되는 형태 1~2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속옷에 자기 몸을 끼워 맞추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저희 소울부스터 제품은 다릅니다. 철저한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속옷 이상의 감동을 주고 있죠. 실제로 저희 제품을 구매하신 분들 중 대다수는 재구매 의사를 밝히고 있어요.”
그렇다면 소울부스터는 어떻게 고객 각자에 속옷을 맞추고 있을까. 우선 고객은 소울부스터에 접속해 약 16개 정도의 ‘퀴즈’를 풀어야 한다. 이 퀴즈 풀이는 고객의 체형과 스타일을 파악하는 과정이다. 이 퀴즈는 그동안 박 대표가 발품을 팔아가며 얻은 국내 각종 속옷 판매 자료와 자체 분석한 여성 가슴 유형 및 체형 등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되어 있다. 물론 이 같은 데이터는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데도 사용된다.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소울부스터에 축적되는 데이터 량이 증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소울부스터는 지난 12월 기준으로 약 3만 여건의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퀴즈가 끝나면 소울부스터는 자체적으로 만든 약 400여 개의 가슴유형 패턴 중 고객 체형에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해 보여준다. 디자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여성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옷의 ‘디자인’과 ‘색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박 대표는 단호하게 ‘소울부스터에선 디자인이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 대표는 “디자인에 특화된 속옷을 ‘란제리’, 그렇지 않은 일반 속옷을 ‘언더웨어’ 라고 한다면 우리는 언더웨어에 가깝다”며 “여성들에겐 디자인이 중요한 만큼 추후에는 디자인 요소도 꾸준히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정식 서비스 론칭 후 소울부스터는 입소문만으로 여성 고객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매출도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소울부스터의 ‘열성 팬’임을 자처하는 한 고객은 혼자 50만 원 어치 속옷을 구매하기도 했다. 별다른 홍보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 유의미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박수영 대표의 목표는 아주 간단 명료하다. 지금 당장 사업영역을 확장하거나, 해외진출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국내에서 가장 여성 속옷을 잘 만드는 회사가 되겠다는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전력 질주를 하고 있다.
박 대표는 말한다. “당장 내년에 달라지는 점은 소울부스터 브랜드를 조금 더 알리기 위해 동영상 광고 및 홍보 활동을 시작한다는 것뿐입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거나, 심지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제작도 아직은 관심이 없습니다(소울부스터는 웹페이지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저 고객들에게 ‘소울부스터 속옷은 정말 편하고 좋다’는 평가를 더 많이 듣고 싶은 마음 뿐이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한국에서 가장 인정받고 사랑받는 여성 속옷 브랜드가 되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소울부스터에 많은 관심 부탁 드려요.”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