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칼럼]일본군 위안부, 역사적 뿌리는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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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만든 ‘평화의 소녀상’이 최근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현대에 들어 세계사적 유례가 없는 국제적 인권유린사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슈화가 늦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역사적 뿌리가 깊다.

일본군 위안부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비롯됐다. 히데요시는 1582년 오다 노부나가의 급사로 졸지에 권력을 줍다시피 차지하는데, 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비롯한 다른 실력자들을 제치고 권력을 차지한 것은 당시의 수도인 교또가 자신의 근거지인 오사카와 바로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문을 비롯해 변변한 지지세력이 없는 그로서는 줍다시피 차지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교또 시내에 대규모 유곽단지를 조성하고 상업을 장려해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몰려들게 함으로써 궁궐도시를 상업 및 금융도시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100여개가 넘는 지방 소국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대륙침략을 공언했다.

그러나 처음 일본의 조야는 히데요시의 공언에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무력을 써서라도 섬나라의 갑갑함과 소외감을 탈피하려는 군국주의자들과 국수주의적 과격불교종파인 니치렌종이 결사적으로 호응한데다 권력의 날파리들이 달라붙으면서 빈말로 여겨지던 히데요시의 공언은 현실로 변했다.

유곽단지로 교또를 번화한 도시로 만들어 재미를 본 히데요시는 큐슈섬의 북쪽에 병참기지로 쓸 성을 쌓을 때도 가장 먼저 교또의 대규모 유곽시설을 옮겨왔다. 그 덕분에 히젠 나고야 성은 1년여의 짧은 건설기간에도 불구하고 환락과 돈벌이를 위해 나선 노무자와 병사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임진왜란 초기 히데요시는 일본군에게 엄정한 군기와 함께 조선에서의 약탈을 금했다. 명분있는 전쟁으로 백성의 지지를 받고, 지방영주들로부터 손쉽게 전비를 각출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개전 4개월 만에 한산도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궤멸됨으로써 더 이상의 전쟁수행이 불가능해진다. 해군의 궤멸로 원정전에 필요한 대규모 병참지원이 막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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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로부터 4년 후인 1596년 후시미성과 오사카성이 대지진으로 허물어지자 그는 무너진 성(당시 일본에서 성은 바로 권력이었다)을 쌓을 비용마련을 위해 다시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한 번의 승리도 못하고 궤멸당한 해군을 본 일본인들은 전쟁재개에 도리질을 쳤다. 그러자 히데요시는 조선에서의 약탈, 강간, 납치를 무한정 보장한다는 조서를 내려 억지로 백성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그 결과 수십만의 조선인이 납치돼 여인은 정조를 유린당하고, 사내는 서양에 노예로 팔렸다.

이러한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은 300년 세월 동안 사라지지 않고 20세기 들어 부활을 한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국력과 세계사의 흐름을 무시하고, 일본의 백성들을 거짓말로 속여 무모하기 짝이 없는 전쟁으로 내몬다. 그리고 전장에서 속은 사실을 알게 된 병사들을 입막음해 항명과 폭동(수십만의 시민들이 일본군에 의해 무차별 살육을 당한 상해사변이 그 예다)을 막기 위해 이웃 나라의 여인들을 군대 위안부로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본래 침략전은 방어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든다. 먼저 백성들에게 승전의 환상을 심어야 하고, 원정에 나서는 군대의 불만해소는 기본이고,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정군 병사들은 항명이나 폭동에 이르기 십상인데,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전쟁은 더더욱 그렇다.

이를 보면, 일본군 위안부의 직접적 피해자는 한국, 중국, 필리핀 등을 비롯한 아시아의 백성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백성들도 피해자였다. 이 때문에 군대 위안부를 부끄럽게 여기는 일본인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일본의 현 정권은 아예 처음부터 실체를 덮어버리려고 온갖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기에 단시일 내 치유가 쉽지 않다. 그리고 피해국가의 정부가 앞장선다고 쉽사리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평화의 소녀상’처럼 피해국 백성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다수의 양심적인 일본인도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캐나다 등은 물론 도쿄와 교또, 오사카를 비롯한 일본 전역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세계평화의 정착과 함께 일본도 떳떳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날 것이다./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조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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