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존엄하고 준비된 죽음

이현우 아주대병원 완화의료센터장(종양혈액내과 교수)




다음달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전면 시행된다. 이 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효과는 없지만 임종을 늦출 수 있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항암제 투여, 혈액투석 등 네 가지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과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 등을 담고 있다. 법적 효력을 가진 연명의료 중단 서식도 마련됐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23일부터 이달 15일까지 10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연명의료 결정 시범사업을 한 결과 임종기 환자 94명이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하겠다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 환자가 의사로부터 질병상태와 치료방법, 연명의료 시행·중단방법, 연명의료계획서 변경·철회절차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계획서를 작성한 경우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하겠다는 계획서가 실제 이행된 것은 43건이었다. 환자가 계획서를 작성했거나 의료진이 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로 의식이 없는 환자의 평소 의사를 확인하거나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한 경우다.

환자에게 병명만 알려줘도 의료진에 항의하는 가족을 종종 본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죄의식을 느끼는 가족도 적잖다. 하지만 환자들의 90% 이상은 자신이 치료에 대해 결정하기를 원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환자가 연명의료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법은 암 등의 질환으로 수개월 안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말기 진단을 받거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가족에 대한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법적 기반이기도 하다. 지침개발과 정부의 지원, 서비스 종류와 이용신청, 전문기관 설치·운영 등에 대한 사항을 담고 있으며 지난해 8월부터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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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완화의료는 말기·임종기 환자를 괴롭히는 통증과 구역·구토·수면장애·식욕부진·호흡곤란·변비 등의 증상을 완화한다. 또 음악·미술요법, 마사지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신체적·정서적·영적 돌봄을 통해 환자와 가족들이 평안하고 의미 있게 준비된 죽음을 맞고 슬픔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총체적 돌봄이다.

호스피스는 6세기 그리스 신전 근처에서 여행객들을 치료하는 곳에서 유래했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제공하는 총체적 돌봄이라는 용어로 쓰인 것은 지난 1948년 영국의 시슬리 손더스가 근대 호스피스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의 호스피스는 1960년대 종교단체에서 시작돼 2005년 15개 완화의료 전문기관으로 확대됐다. 지금은 81개 호스피스 전문의료기관의 호스피스·완화병동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가정형·자문형 호스피스 시범사업도 진행 중이다. 병동 호스피스 사업은 주로 암환자가 대상이며 가정형·자문형은 암은 물론 만성 간경화, 폐쇄성 폐질환, 말기 에이즈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서비스를 일부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많은 말기·임종기 환자와 가족들은 가족과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 채 인공호흡기 등에 의지하며 임종 시기만 늦추다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금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완화의료의 범위도 명확하지 않다.

호스피스·완화병동을 운영하고 임종 준비를 도우면서 존엄한 죽음, 편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준비과정을 통해 환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환자와 가족 또는 가족 간에 용서·화해를 하거나 좀 더 화목해지는 모습도 많이 본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임종기에 더욱 화목해진 가족들을 본다면 다른 어떤 삶보다도 의미 있게 살았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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