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은 당초 권고안에 비해 수위가 높은데다 발표시기도 앞당겨져 업계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당장 판매 감소와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국내 가전 업체들이 “미국 소비자와 근로자들에게 엄청난 손실”이라며 유감을 표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내 업체들이 미국 현지 공장 가동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기업에 대한 관세 폭탄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메시지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넥스틸 등 철강 업체처럼 미국으로 이전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통상당국이 뒤늦게나마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로 결정한 것은 옳다. 미국이 2002년 철강 제품에 최대 30%의 관세를 부과했다가 일본과 유럽에서 보복관세를 경고하자 철회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명심할 것은 미국이 촉발한 양국의 통상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국가 안보를 내세워 알루미늄과 철강에 이어 반도체에 대해서도 규제를 동원할 움직임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까지 앞둔 우리로서는 미국의 전방위 통상압박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세이프가드 발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조항을 반영하고 유럽·일본 등과의 글로벌 공조를 통해 보호무역 장벽을 낮추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업계와 정부가 한마음으로 뭉쳐 미국의 공세에 맞설 긴밀한 대응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규 시장을 개척하고 제품 다양화를 위한 업계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기업들이 해외로 뿔뿔이 흩어지는 최악의 사태가 닥쳐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