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투기 과열을 막기 위한 정부의 규제 드라이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상화폐 거래소 신규 설립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신규 진출을 희망하는 이들은 정부가 검토하는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비현실적인 정책으로 판단하고 거래소 설립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23일 법조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법무법인(로펌)에 가상화폐 거래소 신규 설립에 대한 자문이 이어지고 있다. 조만간 국내 개장을 앞두고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만 3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로펌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대부분 기술력을 믿고 5,000만∼1억원대 소규모 자본금으로 거래소 설립에 나서는 영세 사업자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가 지난해 말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려면 자기자본 20억원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자율규제안을 내놓았지만 이에 대한 강제성은 없다. 현재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설립은 신고제라 관할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에 수수료 4만원을 내고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를 제출해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하면 된다. 사실상 특별한 요건 없이 누구나 거래소를 설립할 수 있는 셈이다.
영세 사업자나 기업이 거래소 신규 설립에 앞다퉈 발을 들이는 이유는 수수료 수익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거래액의 0.05∼0.15%를 수수료로 받는다. 이는 증권사가 주식 거래마다 떼는 수수료보다 10∼30배 많은 수준이다. 특히 초기 개발이나 투자에 드는 비용이 많지 않아 그동안 쌓아온 기술을 활용해 비교적 쉽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정보기술(IT) 기업 입장에서는 거래소 수익 모델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술력과 자본금이 열악한 사업자나 기업이 설립한 가상화폐 거래소가 난립하게 되면 피해가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A로펌 관계자는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가 상당히 많은데 거래소 생존은 결국 많은 이용자 수 확보에 달려 있다”며 “막연히 기술력이 있다고 거래소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패착”이라고 꼬집었다. 또 B로펌 관계자는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 전면 금지라는 극단적 대책을 바로 이행하지는 않겠지만 거래 수익에 대한 과세, 거래소 운영자격 강화, 자금세탁 방지 조치(AML) 의무 부여 등 규제를 언제든 강화할 수 있는 만큼 꼼꼼한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행법으로는 실명확인 의무를 은행 등 금융사에만 부과하고 있는데 가상화폐 거래소에도 이 같은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정부가 은행을 통하지 않고도 거래소를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