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미 재무장관의 노골적 약달러 유도...환율전쟁 불 당겨

외환당국, 므누신에 완패 … 환율 1,060원대 깨졌다

美당국 개입에 弱달러 기조 유지

"1,000원 초반대로 하락" 전망도

원화 강세에 기업 환손실 현실화

25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마감 직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권욱기자25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마감 직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권욱기자


“외환시장의 ‘내로남불’이다. 우리나 중국 등을 환율조작국으로 몰아붙이더니 미 재무장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장개입을 한다. 앞으로 환율전쟁의 파고가 상당할 듯싶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의 환율 발언이 글로벌 외환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다. 므누신 장관은 24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미국의 무역 기회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달러화 약세가 분명히 미국에 좋다”고 말했다. 므누신 장관의 발언은 미국 정부가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돼 글로벌 달러 약세를 부추겼다. 달러 약세는 미국 기업의 수출가격을 떨어뜨려 자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국가들이 자국 통화의 약세를 유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 미국은 끊임없이 견제하고 협박하고 있다. 환율조작국 카드를 내미는 탓에 우리 역시 미국의 약달러 정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고위관계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국제포럼장에서 환율 구두개입을 하고 있다”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사회의 비난도 아랑곳하지않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출렁임은 컸다. 원·달러 환율은 므누신 장관의 달러 약세 옹호 발언에 하락으로 장을 시작했다. 장중 1,060원이 깨지자 우리 외환 당국도 방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이날 종가는 11원60전 급락한 1,058원60전을 기록했다. 지난 2014년 10월30일(1,055원50전·종가 기준) 이후 3년 3개월 만에 가장 낮다. 1,060원대 방어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던 외환 당국이 시장과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붕괴를 막지는 못한 것이다. 이 추세라면 1,000원대 초반까지도 뚫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615A10 원·달러환율과 달러지수 추이



원·달러 환율이 장중 1,060원 밑으로 내려간 것이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가파른 강세를 탔던 원화 환율은 8일에도 장중 1,058원60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때는 외환 당국이 15억달러가량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수물량을 풀어 곧바로 1,060원 위로 다시 끌어올렸다. 이에 놀란 시장은 이후 계속된 달러 약세에도 1,070원 근처에서 원·달러 환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1,060원 사수를 위한 외환 당국과 시장의 샅바싸움 1차전은 당국이 이겼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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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은 얘기가 달랐다.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나선 미국이 보호무역 수단으로 약(弱)달러를 공개 조장하면서다. 이에 주요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3년여 만에 최저치인 88.87까지 밀렸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이 무역협정 재협상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약달러를 조장하면서 시장은 달러 매도의 신호를 받았다”며 “한국에 타격이 큰 세탁기·태양광 제품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한 것도 원화 강세 유도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자 원·달러 환율도 버티지 못했다. 장중 1,057원90전까지 떨어지자 외환 당국이 미세조정에 나서면서 시장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결국 1,060원을 지키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050원 초중반은 물론 1,010원대 초반까지 빠르게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단기 외환시장은 심리게임”이라며 “당국이 1,060원대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더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가 심해지면서 안 그래도 수출 가시밭길에 놓인 기업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환율 급락으로 인한 환손실은 이미 현실화됐다. 이날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4분기 환율 하락으로 2,62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2010년 이후 최악의 실적을 낸 현대자동차는 환율 하락의 영향이 컸다고 밝혔다.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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