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젊어서 좋지 아니한가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졸업시즌인데 대학교 안팎이 조용하다. 확실히 달라졌다. 학사모를 공중에 던지며 활짝 웃는 졸업생들 사진도 신문에서 사라졌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사람도 주변에서 확 줄었다.


지난해 이맘때쯤 TV에서 본 장면이 아직도 가슴 한편에 걸려 있다. 교수들이 졸업생들에게 축가(?)를 불러주는 시간이었다. 노래제목은 ‘걱정 말아요 그대’. 총장님까지 감동연출에 앞장섰지만 정작 졸업생들은 ‘희망고문’인 양 무덤덤했다. “당신들은 걱정 없지. 직장 있고 연금도 받을 테니.” 졸업이 곧 실업이라는 현실 앞에서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대학동창 10명이 겨울밤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는 우리가 대학 졸업한 지 40년 되는 해다. 어마어마한 세월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소주 한잔 들이키며 누군가 말한다. “일찍 태어난 게 다행이야. 우리 졸업할 때는 취직이 수월했잖아.”


취직은 쉬웠을지 몰라도 직장생활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내우외환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상한 친구도 더러 있다. 아직도 직장에 출근하는 나는 그래서 말을 아낀다. 혹여라도 조기 퇴직한 친구 마음에 서운함을 남긴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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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생을 만나면 자동으로 그 시절 노래가 순차적으로 떠오른다. “우리 오늘 만난 것이 얼마나 기쁘냐” 누구 하나가 거기까지 선창하면 그다음부터는 들불처럼 화음이 번진다. “이기고 지는 것은 다음다음 문제다” 응원할 때 불렀던 ‘친선의 노래’ 마지막 부분이다. 라이벌 응원단도 이 노래는 함께 불렀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이기고 지는 것은 다음다음 문제일까.

‘그때 왜 나는 그렇게 이기려고 했을까’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친구들에게 이 말을 했더니 “그 당시에 우린 이겨야 산다고 배웠잖아”라고 대꾸한다. 그런데 우리는 잘 배운 걸까. 배운 대로 이겨서 잘 산 걸까. 이겨서 얼마나 행복해졌을까. 그리고 그 행복은 얼마나 오래갔을까.

청산이니 보복이니 하는 말들이 뉴스의 앞자리를 차지하는 스산한 계절이다. 살벌한 말들이 판치는 와중에 테니스 스타 정현과 노바크 조코비치의 인터뷰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조코비치는 테니스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선수인데 아홉 살 아래인 정현에게 패한 후 이런 고백을 했다. “정현은 마치 벽(wall) 같았다. 랭킹 톱10에 들 잠재력을 갖고 있다.” 패기의 정현 역시 유쾌한 답장을 날렸다. “3세트를 내줘도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조코비치보다 젊어서 2시간 더 경기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 젊음은 대단한 거지만 훌륭한 것은 아니다. 단지 2시간 더 경기할 수 있는 거다. 그 한마디로 충분하다. 능력이 어떻고 출신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 그냥 ‘젊어서’라는 자신감. 듣기에 좋지 않은가. 그렇다면 2시간을 이미 써버린 우리 같은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 재기발랄한 젊은이에게 교훈의 말을 구질구질 늘어놓기보다 그의 잠재력을 즐겁게 예언해주는 것. “나도 옛날에는 너보다 더 힘이 셌어.” 청춘을 질투하는 이런 말로 독거를 재촉하지 말고 “젊으니 뭔들 못해”라고 한마디 던진 후 뒤로 빠져주는 지혜로운 노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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