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무르만스크항에서 최신예 핵잠수함 한 척이 새로 개발된 고성능 소음제거장치 실험을 위해 해저훈련을 떠난다. 초고속으로 해저 항진을 해도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갖춘 타이푼급 잠수함이었다. 그런 비밀병기를 갖춘 잠수함이 미국 근해에서 갑자기 실종되자 미소 양국에서 동시에 치열한 추격전을 벌이는 소동이 벌어진다. 미국 소설가인 톰 클랜시의 첫 작품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붉은 10월’의 이야기다.
잠수함은 은밀한 기동력과 타격을 갖춰야 해 엔진이나 동력장치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유보트가 연합군을 궁지에 몰아넣으며 ‘유령 잠수함’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도 소음이 없고 급속잠항 능력이 뛰어나 쉽게 포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밑 전쟁에서 적에게 탐지되지 않으려면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되게 마련이다. 요즘에는 스크루의 날개 수를 늘리거나 부드럽게 물을 밀어낼 수 있도록 잠수함 동체를 특수 굴곡형으로 바꾼다. 또 음향차단 타일이나 특수 고무재질로 코팅 처리해 소음 발생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과거 소련 잠수함들은 소음이 커서 미국 잠수함이 근처에 있어도 탐지를 전혀 못해냈다고 한다. 미국이 소련 잠수함 후방에서 따라다니며 촬영하고 음문특성을 녹취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각국 잠수함마다 소리에 고유의 특성이 있는데 중국 잠수함이 가장 시끄러운 반면 일본은 비교적 조용한 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 해 전에는 우리의 214급 1호 잠수함인 ‘손원일함’이 추진전동기에서 잠항이 어려울 정도로 소음이 발생해 원인 규명에 나서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중국의 최신 핵추진잠수함이 얼마 전 동중국해에서 기동하다가 소음 때문에 일본 해군에 들켜버리는 망신을 당했다. 소음을 개량했다는 093A형이 작전 중 탐지당해 이틀간의 추격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공해에서 떠올랐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술적 한계로 이런 수모를 겪은 것이다. 물밑 잠수함의 소음을 놓고 벌어지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