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 만에 미국의 주요 정책을 뒤집는 한편 이념과 인종에 따른 갈등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연두교서(State of the Union)’에서 국민통합을 앞세웠다. 하지만 무역 및 안보 등 대외정책에서는 ‘미국 우선’을 견지하며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고 압도적 군사력 우위를 유지해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을 극복하겠다고 강조하는 등 ‘분열’과 ‘세 과시’에 지속적으로 힘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감세에 이어 올해 인프라 확대를 핵심 경제정책으로 내세워 1조5,000억달러 투자를 목표로 의회의 초당적 협력을 촉구했다. 그는 이민정책에서도 국경장벽 건설과 이민심사 강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야당이 요구하는 다카(DACA·불법체류청년 추방 유예) 보완 입법으로 약 70만명의 불법체류 청년에 대한 시민권 부여 등 구제책을 마련해나가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의회 본회의장에서 상하원 의원들과 국무위원·대법관·고위군장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연두교서를 발표하고 “나는 오늘 밤 우리의 차이를 접어두고 공통점을 추구하며 국민을 위해 통합에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배경과 피부 색깔, 신념에 상관없이 우리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일하자고 민주당과 공화당에 손을 활짝 내밀고 있다”며 거듭 ‘통합’을 강조했다.
미 언론들은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혼란과 분열이 가중됐다는 비판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단결과 통합을 앞세워 ‘새로운 미국의 시대(New American Moment)’를 주창한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대대적인 감세안을 처리하며 고용 호조 속에 증시가 고공 행진을 이어간 것도 자랑하며 “지난 1년간 놀라운 발전과 엄청난 성공이 있었다”고 치적을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과 안보 등 대외정책에서는 ‘미국 우선(America First)’ 기조를 더욱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경제적 굴욕의 시대는 끝났다”며 “우리는 무역관계가 더 공정하고 호혜적이기를 바란다”고 말해 최근 무역장벽을 높인 것을 옹호했다. 그러면서 “나쁜 무역협정을 고치고 새로운 협정들을 협상할 것”이라며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압박했다. 그는 또 “무역규정을 강력히 이행해 미 노동자와 지적재산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혀 중국의 불공정무역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고율관세나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등을 발동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그는 안보에서도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경쟁국들이 우리의 이익과 경제·가치에 도전하고 있다”면서 “어떠한 침략행위도 억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핵무기를 현대화하고 재구축해야 한다”고 단언해 압도적 힘의 우위가 평화 유지에 가장 확실한 수단임을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국가(IS) 등의 테러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미군에 쿠바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지하지 않고 재가동하도록 허용했다.
앞서 백악관이 밝힌 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인프라 확대를 위해 1조5,000억달러의 예산을 의회에 요구하면서 “미국은 건설자들의 나라로 우리는 단 1년 만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지었다”고 강조하며 “양당 모두에 안전하고 빠르고 현대화된 인프라를 위해 함께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드리머(Dreamer)’로 불리는 불법체류 청년들이 시민권을 획득하는 길을 마련했다고 설명하며 △장벽 건설 △비자 추첨제 폐지 △가족 등 연쇄이민 폐지 △전문·기술인 우대 이민심사 등 4대 기조를 주축으로 한 이민정책 전환을 의회에 요구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