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K바이오 골든타임을 잡아라] 국내 1위가 세계서는 80위...덩치 못 키우면 '우물안 개구리'

■<중>M&A·IPO로 퀀텀점프하라

신약개발엔 막대한 비용·시간 필요

자금수혈 확실한 방법은 IPO지만

바이오벤처 상장 성공 확률 10%

소규모기업 난립·출혈경쟁 몰두하단

수익성 악화로 제약산업 공멸 불러

인수합병으로 신약개발 앞당겨야

R&D에 재투자 선순환 구조 정착



#.지난해 8월 미국계 글로벌 제약사 길리어드는 바이오기업 카이트파마를 119억달러(약 12조8,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혀 글로벌 바이오제약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글로벌 제약사가 역량을 갖춘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일은 흔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연간 3억달러에 가까운 적자를 이어가던 신생 벤처기업을 상대로 30%나 웃돈을 주고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당초 길리어드는 카이트파마가 보유한 CAR-T(키메라항원수용체 T세포) 치료제 기술만 살 계획이었다. CAR-T 치료제는 3세대 항암제인 면역항암제의 대중화를 이끌 핵심 기술 중 하나다. 하지만 카이트파마의 기술력이 경쟁사에 넘어가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고자 전격 인수합병을 제안했다. 또 하나의 ‘스타 바이오벤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글로벌 바이오제약업계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앞세워 연일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기업에게는 말 그대로 먼 나라의 얘기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에 성공하려면 인수합병과 기업공개를 양대 축으로 날개를 달아야 하는데도 제도와 관습의 장벽에 가로막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다. 조기에 자금을 확보해 연구개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다시 인력과 기술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아야 국내 바이오기업의 태생적인 한계인 ‘돈맥경화’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오벤처기업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업공개를 통한 상장이다. 평균 10년 이상의 기간과 수조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신약 개발은 0.1%의 확률에 도전하는 장기전이기에 기업공개로 확보한 자금은 마치 생명줄과 같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기업들은 기업공개가 신약 개발보다 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첫 바이오벤처로 꼽히는 바이오니아가 1992년 설립된 후 지금까지 상장에 성공한 기업은 89개다. 이미 폐업했거나 휴업 중인 기업을 제외한 국내 바이오벤처기업이 1,000여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장에 성공할 확률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창업 후 상장까지 평균 9년의 시간이 걸렸다. 상장을 목표로 창업했다가 차질을 빚으면 제때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신약 개발이 늦어지고 다시 상장도 연기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에게 상장 기회를 주는 기술특례상장도 국내 바이오벤처기업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도입된 2005년부터 현재까지 상장된 기업은 총 43개이고 이 중 36개가 바이오벤처기업이다. 외형만 보면 바이오벤처기업이 상장에 이르는 지름길 같지만 업계에서는 ‘로또보다 어려운 기술특례상장’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당초 취지와 달리 기술력보다는 실적과 매출 위주로 기업을 평가하는 바람에 선뜻 기대를 갖고 상장준비에 나섰다 고배를 마시는 기업이 비일비재해서다.

임정희 인터베스트 전무는 “기술특례상장을 하려면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제품이 없고 매출이 저조한 바이오벤처기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곳이 없다”며 “이익을 내지 못해도 코스닥에 입성할 수 있는 이른바 ‘테슬라 요건’이 도입됐지만 이마저도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여서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다”고 말했다.


인수합병도 국내 바이오제약기업이 글로벌 무대에 진출하기 위한 필수적인 관문이지만 국내 기업들은 유독 인색하기만 하다. 상대적으로 자금이 많은 전통 제약사는 경쟁사 인수를 일종의 ‘금도’로 여기고 일찌감치 시장에 진출한 대기업은 혹시 있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수합병을 꺼리고 있어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바이오제약기업들이 인수합병에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하면 총체적인 경쟁력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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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산업은 1990년대 일본과 판박이다. 당시 일본에는 1,500여개 제약사가 난립하며 복제약 경쟁에 몰두했다. 경쟁사보다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겠다는 마케팅 경쟁은 불법 리베이트로 이어졌고 제약산업은 급격하게 경쟁력을 잃었다. 출혈 경쟁은 수익성 악화를 낳자 연구개발 역량도 일제히 바닥으로 추락했다. 개발 중인 신약도 상용화까지 장애물이 많았지만 절대로 남에게는 줄 수 없다는 욕심에 기술수출을 철저히 거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일본 정부가 인수합병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산업재생법을 도입하자 일본 제약사들은 인수합병에 눈을 돌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약산업이 전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컸다. 대형 제약사가 중소형 제약사를 인수하고 다시 대형 제약사끼리 합치는 ‘제약 빅딜’이 잇따르면서 다케다, 아스텔라스, 다이이치산쿄 같은 초대형 제약사가 탄생했다.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운 일본 제약사들은 곧장 해외 기업 인수와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글로벌 50대 제약사에 이름을 올린 일본 기업은 10곳에 달했다. 매출액 기준 글로벌 의약품 상위 100개 중 11개가 일본 제약사의 신약이다. 연매출 20조원의 일본 최대 제약사로 꼽히는 다케다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매년 수조원을 들여 경쟁력 있는 바이오벤처를 품에 안으며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내 최대 제약사인 유한양행의 연매출이 1조5,000억원 수준이고 글로벌 순위가 80위권에 불과하다는 점에 비춰보면 경쟁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산업혁신연구본부장은 “80조원에 달하는 일본 제약산업은 단일 국가로 미국과 중국에 이은 글로벌 3위”라며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신약 개발을 앞당기고 신약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다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본 제약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기에 회사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고 다시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스타 바이오벤처’가 없다는 것도 국내 바이오제약산업의 현주소다. 창업 5년 안팎에 회사를 매각하고 새로운 영역에 뛰어드는 바이오벤처가 늘어야 창업 시장이 활성화되고 우수 인재를 바이오산업로 끌어오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한 셀트리온이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으로 올라섰지만 출구 전략이 아닌 독자 경영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미 스타 바이오벤처의 범주를 넘어섰다”며 “개발 중인 신약을 중간 단계에서 글로벌 기업에 이전하는 기술수출에 인색한 것도 국내 바이오제약업계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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