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조상인의 예(藝)-<48>이암 '모견도(母犬圖)' ]'다복한 가족' 보는 듯 흐뭇

옅은 묵·진한 묵 자유자재로 섞어 쓴 탁월한 화법

문인화가의 분방함·극사실주의 섬세함 함께 갖춰

세종대왕 아들 임영대군 이구의 증손인 왕의 혈통

독자적 화풍 日까지 전해져 한 때 일본인 낭설도

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남은 작품 스무 점도 안돼

이암 ‘모견도(母犬圖)’ 16세기 조선, 종이에 담채, 73.5x42.5cm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이암 ‘모견도(母犬圖)’ 16세기 조선, 종이에 담채, 73.5x42.5cm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붉은 테 목줄을 맨 어미 품으로 강아지들이 파고든다. 윤기 흐르는 어미의 검은 털색을 닮은 검둥이부터 누렁이, 흰둥이까지 세 마리다. 다복하다. 아직 어린 것들이라 어미 젖을 더듬거린다. 극성스러울 정도로 젖을 찾아 문 흰둥이가 아무래도 막내인 성 싶다. 거꾸로 매달리다시피 엄마 품을 차지했다. 그 옆 검둥이도 적극적이다. 늘어뜨린 어미의 긴 앞다리를 들어 비집고 안길 틈을 찾았다. 앙앙거리는 둘보다도 어미 등에 툭 걸터앉은 누렁이가 외려 가장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헤벌어진 입과 잠든 얼굴을 보니 녀석은 이미 배불리 먹은 모양이다. 강아지를 가까이 두고 본 적 있는 이라면 누구나 미소짓게 만드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450여년의 시간을 초월한 공감이 느껴진다. 곧 다가올 설날, 정성스레 차린 상 주변으로 둘러앉은 가족들이 꼭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소박한 행복에 배보다 마음이 먼저 그득하게 불러온다. 마침 올해는 무술년(戊戌年) 개의 해라 이 그림이 더욱 의미있게 읽힌다.

한국 회화사에서 강아지 그림이라는 특정 분야를 의미심장하게 들여다보게 한 이, 그중 최고봉으로 꼽히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이 ‘모견도’를 그린 정중(靜仲) 이암(1507~1566)이다. 동물이나 곤충 그림으로 계보를 이룬 조선 화가를 꼽자면 고양이를 기막히게 그린 변상벽, 소를 잘 그린 김식, 말을 빼어나게 묘사한 윤두서, 나비를 별칭으로 얻을 정도였던 남계우 등 여럿이 있다. 개 그림으로는 옆구리 긁는 흑구를 그린 김두량이 있었고, 풀밭 위에 노는 새끼들을 바라보는 어미개를 그린 ‘모구양자’의 김홍도, 춘화 풍속도에 교미하는 개를 집어넣어 해학미를 더한 신윤복, 오동나무 아래에서 달 보며 짖는 개를 그린 장승업·김득신 등이 탁월했다. 그럼에도 ‘개’에 관한 한 불세출의 화가는 단연 이암이다. 한국미술사의 권위자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암을 두고 “가장 품위있는 개 그림을 그린 화가”라 칭송했다.


뭐가 그리 뛰어났나 보자. 우선 기법의 독특함이다. 이암은 물을 많이 섞은 연한 먹을 붓 전체에 머금은 다음 단숨에 휘두르듯 강아지를 그렸다. 어렴풋한 형태만 있으니 꼭 그림자 같았을 터이다. 붓질이 마를 때쯤 화가는 진하게 먹을 갈고 좀 더 가는 붓을 꺼낸다. 날렵한 선으로 강아지 몸통과 작달막한 다리와 발가락 등의 윤곽을 그린다. 수염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전문용어로는 윤곽선 없이 옅은 묵으로 형태를 그리는 것을 몰골법, 진한 윤곽선을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채우는 기법을 구륵법이라 한다. 이암의 탁월함은 이처럼 몰골과 구륵법을 자유자재로 섞어 쓰면서 구성에서도 세심함과 느슨함이 공존하게 했고, 문인화가로서의 분방함과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섬세함을 함께 갖춘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암은 세종대왕의 아들인 임영대군 이구의 증손으로 왕실 종친이다. 묵죽(墨竹)으로 유명한 이정보다 47세 위이나 사촌지간이다. 두성령(杜城令)이라는 제호를 받았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오직 짐승 그림에 뛰어났다는 사실 뿐,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왕족인데도 중인이나 평민들이 대부분이던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한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인종실록’에 당시 도화서 대표 화원이던 이상좌와 함께 중종의 어진을 그릴만한 화가로 승정원에 의해 추천됐다는 기록이 전한다. 뛰어난 실력을 차마 묵혀둘 수 없어 화원으로 나섰을까? 왕족이 비교적 낮은 직급인 도화서 화원으로 몸담았다는 점이 좀 의아한 데다 활동에 대한 기록이 너무도 적어 궁금증과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화가다. 다만 따뜻하고 동화적인 분위기로 개와 고양이를 그린 것으로 보아 그의 삶이 거칠고 험난했기 보다는 평화롭고 안온한 편 아니었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어쨌거나 이암은 조선 초기 화단의 동물화와 화조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한국적 화풍을 정립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게다가 그의 그림은 일찍이 일본에 전해졌다. 일본에서는 그를 실제 이름이 아닌 탄잔세이슈(完山靜中)로 불렀다. 그림만 본 어떤 일본인이 이암을 화승(畵僧·그림 그리는 승려)으로 잘못 알고 중국 송나라 화가 모익에게서 배웠고 채색 강아지 그림을 잘 그린 사람이라는 식으로 기록을 남겼다. 화가로서 이암의 명성이 일본에 자자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는 하나 그로 인해 꽤 오랫동안 일본인이라는 낭설이 퍼졌다. 그 바람에 이암의 그림을 본 17세기 일본화가 다와라야 소타츠, 오가타 소켄 등이 모방해 그렸을까. 이들은 일본 특유의 수묵채색의 장식화를 그린 린파(林派) 양식을 태동하게 한 인물들이니, 이암의 영향은 18세기 이후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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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지는 이암의 그림은 채 스무 점이 안 된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대부분 소실됐다. 국내에 있는 게 10점 정도고 국외에는 전칭작(확증은 없으나 해당 작가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포함해 미국에 1점, 일본에 8점이 확인된 상태다. 그의 그림이 어떻게 바다 건너 일본에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일본에 있어 살아남았다고 볼 수도 있다.

북한에서는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이 강아지가 등장하는 ‘화조묘구도’ 두 폭 한 쌍과 기러기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이 그림의 사연은 기막히다. 이들 작품은 일찌감치 조선총독부 기록물에 그 존재가 알려졌으나 일본인이 소장한 터였다. 한동안 행방이 묘연하던 그림을 1966년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이 구입해 북한에 기증했다. 이후 1980년 일본에서 간행된 조선미술박물관 도록을 통해 비로소 귀한 그림의 소장처가 확인됐다. 동백꽃 만개한 나무 위에 검은 고양이가 걸터앉았고 그 아래로 ‘모견도’에서 졸고 있던 누렁이가 대치상황을 이루고 있다. 옆으로는 검은 강아지가 새까만 깃털을 물고 지나간다. 또 다른 한 폭은 누렁이와 성난 고양이가 팽팽하게 맞선 장면을 그리고 있으니 강아지들의 한가로운 봄날이 여러 폭의 그림으로 이야기를 이루는 모양새다.

이들 북한 소장 그림은 보물 제 1392호로 지정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화조구자도’를 떠올리게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지낸 이원복 부산시립박물관장은 ‘두성령 이암의 영모화’라는 글에서 “(북한에 있는) ‘화조묘구’ 쌍폭과 (리움 소장의) ‘화조구자’를 함께 살필 때 종이 질과 크기, 각 화면 상단에 둘씩 있는 동일한 인장, 구도와 필치의 유사성, 같은 종류의 강아지들인 점” 등을 근거로 “이들 3점은 같은 시기에 제작된 일괄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모견도’를 보자. 이 그림의 특이한 점은 단연 어미개의 붉은 목줄이다. 금빛 도는 밤톨 만한 방울이 달려 있고 소재나 형태가 고급스럽다. 이 때문에 왕실이나 귀족이 기르던 ‘지체 높은 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붉은 목줄을 맨 개는 고구려 고분인 ‘안악 3호분’ 벽화에도 등장한 적 있다. 그 개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무덤 주인도 귀족 이상 왕족급의 인물이었다. 이암 역시 신분이 높으니 그런 강아지를 키웠을지도, 혹은 가까이서 직접 관찰할 기회가 잦았을지 모른다. 어미개와 강아지의 털이 자연스럽게 번지는 표현으로 색깔이 바뀌는 것 또한 기품을 더해준다. 터럭 한 올 한 올 일일이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생명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어미개의 긴 다리마저도 우아하다. 사람 아닌 한낱 강아지이건만 자신만만하고 느긋하고 장난기 많은 각각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동양화에서는 그림을 통해 그 대상의 내면까지 드러내는 것을 ‘전신사조(傳神寫照)’라고 하는데 이암이 그 경지를 이뤄냈다. 나무 아래로 향로(鼎)모양의 도장과 이암의 호 ‘정중(靜仲)’을 새긴 인장이 찍혀 있다.

때맞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이 그림을 내걸었다.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 개편과 무술년 새해의 시작에 맞춰 ‘개를 그린 그림, 그림 속의 개’를 기획했다. 이암의 ‘모견도’ 옆으로 작자미상의 ‘맹견도’가 걸려 있다. 눈이 좀 처진 개이나 굵은 쇠줄을 목에 맨 것이 사나운 개임이 틀림없다. 털 긁는 검둥이 뿐 아니라 누렁이도 볼 수 있으며 털 덥수룩한 삽살개도 짖으며 튀어나올 듯하다. 고양이와 노는 강아지, 매 잡으러 나선 용맹스러운 사냥개도 눈길을 끈다. 인간의 오랜 벗을 그린 개 그림을 보고 소소한 삶의 행복을 얻어간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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