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예의를 지킵시다]5,000만이 사이버 비방·유언비어 노출…

<3>'익명의 바다'서도 네티켓을

'대나무숲' 등 SNS 소통창구서

특정인물 허위정보·비하글 난무

멀쩡한 사람이 성범죄자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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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황당(34·가명)씨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035720)톡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이른바 ‘받은 글’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자신의 실명과 사진을 포함해 ‘박황당, 성범죄자 명단에 있음’이라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박씨는 “전과 기록이 없는데 뜬금없이 이런 말이 나돌고 있어 괴롭다”고 토로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홍의사(46·가명)씨는 사이버 명예훼손 공격으로 본인이 운영하는 병원이 경영난에 빠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네티즌이 각종 의료 카페나 블로그 등에 ‘홍씨가 운영하는 피부과, 치료는커녕 흉터 남기는 나쁜 병원’이라며 비방하는 글을 계속 올렸기 때문이다. 홍씨는 “객관적인 증거도 없이 비난만 하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인터넷 도입 초기 정치인과 연예인 등 ‘공인’에게만 집중됐던 사이버 명예훼손 행위가 모바일 메신저의 확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진화로 5,000만명 전 국민을 겨냥하고 있다. 증권가 사설정보지(지라시) 형태의 받은 글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 싫어하는 사람의 안 좋은 소문을 내거나 사진이나 과거의 기록을 모두가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배포하는 방식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박씨와 김씨 사례 모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인터넷피해구제센터에 직접 접수된 내용으로 사이버 명예훼손이 우리 주변에 가까이 존재하는 위협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일반인이 소속 학교나 조직에서 겪은 불편과 어려움을 익명으로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SNS 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앱)에서도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 역기능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세계 최대 SNS인 페이스북에서 ‘대나무숲’이나 ‘대신 말해드립니다’ 등의 이름으로 개설된 국내 대학의 익명 소통 창구는 약 140여개에 달한다. 이 중에서 중앙대 대나무숲 페이지에서는 지난 2015년 한 단과대학 학생회장 후보자의 유언비어가 유포된 데 이어 이듬해는 한 남학생을 성폭행으로 지목한 허위 정보가 뿌려져 피해자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아울러 본인이 다니는 직장을 인증한 뒤 익명으로 활동하는 앱 ‘블라인드’에서도 명예훼손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대기업에 근무한다고 밝힌 한 피해자는 “회사에서 옆자리로 추정되는 여성 직원이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까지 비하하면서 누군지를 알아볼 수 있게 블라인드앱에 글을 써놓아 피해를 보았다”면서 “공인이나 연예인도 아닌데 너무 심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SNS나 앱에 올라온 명예훼손성 내용이 모바일 메신저를 타고 확산하면서 피해는 더 심각해진다.

사이버 명예훼손 건수 50% 급증

미디어 기술 발전따라 급속 확산

추적 어려워…“처벌 강화해야”


이처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무분별한 제보나 의견이 분출되면서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 행위 발생 건수는 2014년 8,880건에서 지난해 1만3,348건(경찰청 사이버안전국)으로 3년 만에 50.3%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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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명예훼손 행위가 점차 증가하는 이유를 기술 발전과 심리적 요인으로 나눠 보고 있다.

우선 미디어 환경이 기술 발전에 따라 급격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예를 들어 과거에는 ‘뒷이야기’를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하거나 전화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모바일 메신저, SNS, 앱 등 외부와 연결된 다양한 통로를 통해 분출할 수 있다”면서 “개개인이 1인 스피커로서 타인을 향한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사이버 명예훼손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또한 인간이 본능에 따라 정보에 예민하고 정보 제공을 통해 권위를 얻으려 하는 생물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성 글이나 발언도 빠르게 온라인 공간에서 퍼지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받은 글 등을 타인에게 전달함으로써 ‘내가 정보를 제공했다’는 우월감을 느끼는 심리가 존재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온라인 예절을 지키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은 뒷전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모바일 메신저나 SNS·앱 등을 통해 사이버 명예훼손 피해를 보아도 구제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명예훼손성 글을 모바일 메신저 등에 최초로 유포한 사람을 찾으려면 대화 내용 추적이 필수적인데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카카오톡의 메시지의 서버 저장 기한은 최대 72시간이다. 피해자가 즉각 사실을 인지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최초 유포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카카오 측은 “모든 메시지를 계속 저장해두면 엄청난 서버 설비가 필요한데다 사용자의 ‘사생활 침해’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기한을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2014년에는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이 쉽게 특정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럽 지역에서 주로 쓰이는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이른바 ‘사이버 망명’을 시도하는 사용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익명게시판 역할을 하는 앱 블라인드 역시 내부 시스템에 따라 익명성을 절대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에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나서도 명예훼손성 글을 올린 사용자를 추적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 교수는 “소통 활성화와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모든 메시지와 활동을 실명으로 저장해두는 것은 무리”라면서 “결국 사이버 명예훼손죄의 처벌 실효성을 강화해 사용자가 잘못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사이버 명예훼손죄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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