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 자금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연초 글로벌 증시 상승 랠리에 대부분의 해외 주식형펀드에 자금이 흘러들어오고 있지만 유럽펀드는 환매가 이어지며 상승 분위기를 타지 못하고 있다. 유럽 경기 회복세가 다른 국가에 비해 더딘데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국내 투자자들이 유럽 투자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5일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간 유럽 주식형펀드에서 426억원이 빠져나갔다. 해외 주식형펀드 가운데 500억원 가까운 자금이 순유출된 펀드는 유럽 주식형펀드가 유일했다. 지난해에도 유럽 주식형펀드는 6,061억원이 순유출돼 3조8,073억원이 순유입된 전체 해외 주식형펀드 가운데 가장 큰 유출을 기록했다. 유럽 주식형펀드에서는 지난해 7월 103억원과 9월 90억원을 제외하고 줄곧 자금이 빠져나가며 4개월 연속 환매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자금 이탈의 가장 큰 원인은 높아지는 긴축 부담과 정치 잡음이 꼽힌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경기 상승세를 바탕으로 긴축정책연장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며 “이미 시장 금리의 박스권 탈출이 감지되면서 통화 긴축에 대한 경계감을 조금씩 높여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유럽 주식형펀드의 수익률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한 형편이다. 지난해 초 1% 수준에 불과했던 유럽 주식형펀드는 글로벌 증시 상승으로 최근 1년간 14.59%로 수익률이 개선됐지만 전반적인 증시 호황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같은 기간 베트남 주식형펀드는 47.23%의 기록적인 수익률을 달성했고 중국(42.32%), 아시아태평양(30.29%), 북미(24.54%), 동남아 주식(23.57%) 등이 20% 이상을 달성했다. 유럽펀드보다 높은 수익률을 좇은 투자 행렬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경기 모멘텀이 둔화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점도 부담이다. 삼성증권(016360)은 2월 자산배분 전략 보고서를 통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투자 선호도를 ‘+2’점에서 ‘+1’점으로 하향조정했다. 삼성증권 이병열 자산배분전략담당 상무는 “선진국 중에서도 강한 경기 모멘텀을 기록한 유로존에 긍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했지만 최근 예상과 달리 경기 상황과 기업이익간 괴리가 계속되고 있다”며 “유로존 전체의 경기상황과 기업이익 역시 절대 수준에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타지역에 비해 느린 편”이라고 평가했다. 이 상무는 “유로존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은 유지하지만 상대적인 관점에서 유로존의 기업이익 부진과 경기 모멘텀의 둔화로 선호도를 한 단계 하향했다”고 말했다.
정치적 불확실성도 유럽펀드에서의 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윤 연구원은 “독일 연정 협상뿐만 아니라 오는 3월부터는 이탈리아 총선 이슈까지 부상한다”며 “경기 상승과 금융시장 개선으로 유럽 채무위기가 한창이던 포퓰리즘 분위기는 가라앉았지만 연정 구성을 통한 내각 출범까지 유럽발 정치적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