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4일 홍순규 대장과 함께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가량을 걸어가자 이끼처럼 보이는 생물이 가득 붙은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이 생물의 정체는 ‘땅의 옷’이라는 뜻을 가진 지의류다. 남극 연구자들이 이 지의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남극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종과학기지는 남극 지의류의 한 종류인 라말리나 테레브라타에서 기존 물질보다 항산화 성질이 월등히 뛰어난 새로운 구조의 화합물인 ‘라말린’을 분리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라말린은 기존에 시판돼온 합성 항산화제인 비타민C보다 50배 이상 되는 매우 높은 항산화 효과를 내 산화 관련 질병 치료제나 노화방지용 기능성 식품, 주름개선용 화장품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실제로 2011년 LG생활건강이 이 라말린을 활용해 ‘프로스틴’이라는 화장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홍 대장은 “지의류가 남극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을 연구하면 인류에게 이로운 새로운 물질을 찾아낼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의류는 성장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을 경우 성장을 멈추고 빛·수분·온도 등 요건이 갖춰지면 다시 성장하는 독특한 성질을 지녔다”고 소개했다.
남극에서 사는 미생물·포유류·곤충류 등에서도 생명공학의 블루오션 기회는 널려 있다. 세종과학기지가 2010년부터 극지생물에서 유래한 얼지 않는 단백질을 발견한 것이 대표적이다. 극지생물들이 극한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혈액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단백질로 그 특성을 활용해 화장품이나 의약품 등을 만들 수 있다.
남극의 생물자원 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남극의 지하자원처럼 개발 규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남극에서는 1961년 발효된 남극조약과 1991년 채택된 마드리드의정서에 의해 오는 2048년까지 남극 내 지하 광물자원 개발이 금지돼 있다. 한국의 세종과학기지가 2003년 남극반도 남셰틀랜드제도의 대륙사면에서 국내 천연가스의 연간 소비량(약 3,000만톤)의 약 200배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가스 하이드레이트층을 발견하고도 활용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생물자원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관련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은 있지만 아직 명확한 규정은 없다. 남극 현지에서 만난 이홍금 전 극지연구소장은 “생물자원에 대한 규정이 만들어지지 않은 지금이 응용연구의 적기”라며 “이미 극지 연구 강대국들은 생물자원을 활용해 자외선차단제, 항산화 기능성 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지하자원 탐사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2048년 이후 마드리드의정서의 유효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이후 상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호일 극지연구소장은 “극지 연구 강대국들 역시 알게 모르게 쇄빙선 등을 이용해 자원 탐사를 진행해 자기들만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한국도 끊임없이 탐사를 해야 하고, 특히 남극의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자원을 시추할 노하우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