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S-story]공룡로펌 일감 싹쓸이·출혈 수임경쟁…강소로펌이 무너진다

●흔들리는 전문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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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 출범한 법무법인 한얼은 지난해 말 간판을 내렸다. 한얼은 국내외 변호사 10여명이 모인 작은 로펌이었지만 인수합병(M&A) 등 기업 자문 시장에서는 강소 로펌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2012년에는 세계적 M&A 전문매체인 에커지션인터내셔널에서 한국 최고의 ‘부티크 로펌(전문화된 소형 로펌)’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대형 로펌에 일감을 맡기면서 한얼은 점점 경영난에 시달렸다. 설립자인 백윤재 대표변호사 역시 손꼽히는 국제중재 전문가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한얼을 폐업한 뒤 올 초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율촌으로 옮겼다. 지인에 따르면 백 대표변호사는 30년을 일군 로펌이 무너지는 것을 매우 허탈해했다고 한다.


작년 해산한 법무법인 46곳 달해

부티크 선정된 ‘한얼’마저 문닫아

김앤장·광장 등은 年 수천억 매출



법조계에서 한얼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국내 법률 자문 시장의 전반적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경영난을 못 이겨 문 닫는 중소형 로펌이 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일감이 대형 로펌에 몰리다 보니 허리에 해당하는 중소·중견 로펌부터 무너지는 것이다.

6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산한 법무법인 수는 46곳으로 2013년(22곳)보다 24곳 늘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해산을 신고한 공동법률사무소 숫자도 같은 기간 39곳에서 55곳으로 16곳 증가했다. 법무법인이나 법률사무소 모두 최근 5년 동안 꾸준히 해산 규모가 커졌다. 국내 로펌은 크게 법인사업자로 운영되는 법무법인과 개인 변호사들의 조합인 법률사무소로 나뉜다. 대한변협의 한 관계자는 “전체 로펌 수가 늘기도 했고 법무법인으로 다시 출범하기 위해 해산하는 공동법률사무소도 있어 숫자의 중복을 감안해야 한다”면서도 “한계 상황에 몰린 중소 로펌들이 문을 닫는 법조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전체 시장과 대형 로펌 상황은 정반대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동안 2조7,000억원대 규모에서 주춤했던 국내 법률 자문 시장은 지난해 3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1위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연 매출은 2016년 8,0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원을 돌파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김앤장 한 곳이 시장의 30~40%를 차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법조계는 2·3위 로펌인 법무법인 광장과 법무법인 태평양도 지난해 매출이 3,000억원을 넘겼거나 올해 달성이 유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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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들은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적폐청산 수사·재판 등 ‘대목’을 만났다. 갈수록 강화하는 공정거래·세금 등 규제, 기업 비리 수사도 이들 로펌에는 호재다. 김앤장은 롯데그룹 경영비리 사건과 최씨에 대한 뇌물 공여 사건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을 변호한다. 김앤장은 1조원 규모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2심에서도 노조에 맞서 회사를 대리한다.

정부 규제 강화에 기업 소송↑

시장구조 대형에만 점점 유리

‘부익부빈익빈’ 갈수록 뚜렷

태평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변호인단을 맡아 2심에서 집행유예를 얻어냈다. 퀄컴이 공정거래위원회·삼성전자·애플을 상대로 벌이는 1조원대 공정위 과징금 불복 소송에도 태평양뿐 아니라 광장·율촌·화우 같은 내로라하는 대형 로펌이 두루 참여했다. 10대 로펌의 한 변호사는 “공정거래를 비롯한 일부 분야는 수십년간 축적한 자료 없이는 법률 자문이 불가능하다”며 “시장 구조가 점점 대형 로펌에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대형 로펌 집중 현상이 심화할수록 손해는 대다수 서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한다. 대형 로펌에는 얼마든지 비용을 댈 수 있는 기업들의 사건이 집중된다. 하지만 개인 사건이 몰리는 중소 로펌은 생존을 위한 저가 수임 경쟁에 시달리면서 정작 소송·자문의 질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얘기다. 서울 소재 중소 로펌의 한 대표변호사는 “건당 수임료가 줄면서 사건을 많이 맡는 게 중요하다 보니 변호사 3명이 필요한 업무에 1명만 투입하는 등 저가 수임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대형 로펌도 이런 부작용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다”고 전했다.

김현 대한변협 협회장은 “변호사 업계 양극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변협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변호사들의 전문화나 해외 시장 진출 등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혁·안현덕기자 2juzso@sedaily.com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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