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특파원 칼럼] 평창에서 챙겨야 할 손님

손철 뉴욕특파원





지난달 중순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의 주인공은 단연 부활한 미국의 ‘빅3’였다.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는 지난해 각각 단일 차종으로 미국 내 판매 1·2·3위를 휩쓴 자사의 픽업 브랜드 중 신차를 대거 출시했다. 한국에서는 거의 수요도 없는 픽업들에 빅3가 마케팅을 집중하는데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한국의 자동차 시장을 더 개방하라며 윽박지르는 형국이 씁쓸했지만 ‘안방 잔치’라는 측면을 고려해 넘어갔다.

전시장 콘셉트가 비슷한 미국의 빅3를 제치고 나니 눈에 띄는 것은 디트로이트 코보센터를 홈그라운드 이상으로 차지하고 있는 일본 차 메이커였다. 도요타·닛산·혼다 등 일본 빅3는 물론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선전한 스바루·마쓰다까지 최대한 넓은 공간을 임차해 신차에 기존의 판매 모델들까지 대거 선보였다. 일본 빅3는 각각 렉서스·인피니티·아큐라 등 산하 럭셔리 브랜드의 부스들도 별도로 확보해 현지 언론들과 관람객을 유혹했다. 현대·기아차가 각각 ‘월드 프리미어’로 디트로이트에서 처음 세계에 선보이는 신차를 내놓으며 고군분투했지만 일본 차의 물량 공세를 따라 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미국 내 판매 순위에서 빅3의 막내인 크라이슬러를 이미 추월한 도요타는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여하는 미국 대표팀의 스폰서임을 내세워 평창올림픽까지 적극 활용했다.


일본 차 빅3의 미국 내 한 해 판매가 약 600만대로 현대·기아차 판매를 합친 것의 5배에 육박하는데도 미국의 온갖 통상 압박은 한국으로 쏠리고 있는 현실의 이면을 디트로이트에서 목격한 셈이다. 모터쇼 개최 며칠 전 도요타와 마쓰다는 미국 앨라배마에 16억달러를 투자해 일자리 4,000개를 창출하겠다며 트럼프 정부의 비위를 맞췄다. 이들은 미 소비자와 딜러들에게도 최대한 성의를 보이며 친일파 양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디트로이트 모터쇼의 ‘북미 올해의 차’는 혼다 어코드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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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에 회의감을 보이던 때다. 행사장에서 만난 현대차 미국 법인의 고위관계자는 도요타가 평창까지 이용하는 데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아베는 한국에 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앞서 외교부가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중대한 결함을 지적하고 일본이 출연한 10억엔을 반환하겠다고 해 양국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이었지만 국익을 우선시하는 일본인의 특성상 아베 총리가 2년 후의 도쿄하계올림픽을 위해서라도 평창올림픽에 참석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미국에서 일본을 상대로 피 말리는 진검승부를 매일 벌이는 그의 말은 과연 적중했다.

아베 총리는 오늘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축하한다. 하지만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만나 대북 강경 메시지를 낸 데 이어 한미 군사훈련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를 맞는 국민적 감정은 위안부 문제까지 겹쳐 썩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여당의 중진 의원이 “남의 떡에 제집 굿할 심산”이라고 심한 타박을 놓을 정도다.

여기에 북한이 남북 단일팀 구성에 이어 예술단과 응원단을 보내고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까지 고위급 대표단으로 평창에 파견하며 주목을 끌고 있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딴지를 거는 듯한 아베 총리에게 많은 이목이 집중될 것 같지는 않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도 평창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영애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고문을 평창에 보내기로 해 일본의 도움이 없더라도 평창의 흥행은 순항할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포스트 평창을 겨냥해 아베 총리가 한국을 찾듯 우리도 평창의 성화가 꺼진 후를 대비해 진객을 세심하게 대접했으면 한다. 예측불허인 남북 관계와 북핵 대응, 통상 문제 등으로 이견이 적지 않은 한미 관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로 민낯이 드러난 한중 관계를 돌아보면 일본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별 목적 없이 일본 총리를 정부와 국민이 진정성 있게 귀빈 대접 하기에는 올림픽보다 좋은 무대가 없을 듯하다. runiorn@sedaily.com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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