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스포츠

[이사람] 썰매 개척자 강광배 "바퀴달린 썰매 타던 한국, 올림픽 金 꿈꾸다니 격세지감"

스키 지도자 꿈꾸다 갑작스런 부상

재활치료 중 운명처럼 루지와 만나

동료들 하나 둘 떠나도 묵묵히 훈련

세계 유일 올림픽 썰매 전종목 출전

동계스포츠에 대한 관심 갈수록 늘어

꽃 피우고 열매 따는 일은 제자들 몫

지도하는 학생들 중에도 재목감 여럿

윤성빈 뛰어넘는 스타들 나올수도





“격세지감 말고 지금의 기분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은 없는 것 같네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우리나라가 참가했던 이전 동계올림픽들과 가장 크게 다른 것 중 하나는 바로 ‘썰매’다. 한국은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피겨 이 세 종목에서만 메달을 획득했다. 그런데 평창에서는 썰매 종목에서도 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대표팀 감독이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가 목표라고 공언할 정도다. 남자 스켈레톤(엎드려 타는 썰매)의 윤성빈은 세계랭킹 1위이고 봅슬레이의 원윤종·서영우조도 강력한 금메달 후보다.

윤성빈·원윤종·서영우 이전에 강광배(45)가 있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부터 2010년 밴쿠버 대회까지 4회 연속 올림픽 출전 기록을 가진 그는 썰매 전 종목(누워서 타는 루지 포함 3개 종목)에 걸쳐 올림픽에 출전한 세계 유일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나가노 대회에 루지 대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와 2006년 토리노 대회에 스켈레톤 대표, 2010년 밴쿠버 대회에 봅슬레이 대표로 출전했다.

‘한국 썰매의 개척자’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를 지난 5일 경포해변이 내려다보이는 강릉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평창올림픽에 참여하는 그는 한국이 썰매 강호로 주목받는 현 상황에 대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20년 전 나가노올림픽부터 시작된 강 교수의 올림픽 도전사는 곧 한국 썰매의 역사다. 학창 시절 태권도·유도 등을 했던 강 교수가 처음 접한 동계스포츠는 썰매가 아닌 스키였다. 1990년 무주리조트 눈썰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휴일에 재미로 스키를 타기 시작했고 이내 소질을 발견했다. 그렇게 1년여간 “미친 듯이” 스키를 탔고 이후 스키 강사로 5년을 일했는데 당시 강 교수에게 스키를 배우던 초등학생이 현재 스키점프 국가대표인 김현기(35)다.

강 교수는 “선수생활이 화려하지 않아도 지도자로 성공하는 경우가 꽤 있지 않은가. 나도 스키로 국가대표 지도자가 되는 꿈을 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그는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으로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는다. 돌아보면 그때 그 사고가 강 교수를 썰매의 길로 인도한 셈이다. 막바지 재활치료를 받던 1995년의 일이다. 대학교 게시판에서 루지 국가대표를 뽑는다는 공고를 접한 강 교수는 어떤 종목인지도 모른 채 그저 ‘국가대표’라는 글자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보고 나서야 어떤 운동인지 알았어요. 무릎 부상 전력이 있지만 누워서 타는 거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한 거죠.” 그렇게 썰매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태극마크의 꿈을 이뤘다.

강 교수는 그러나 “말이 국가대표지 바퀴 단 썰매로 아스팔트를 달리는 게 훈련의 거의 전부였다. 훈련시설이 없고 실업팀도, 상무도 없으니 비전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고 돌아봤다. 대학 졸업반이었다. 안정된 직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간에 무주리조트 직원 면접을 봤던 이유다. 채용 의사까지 들었지만 강 교수는 돌아가는 길에 “아무래도 루지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화했다. 이를 전해 들은 대학 지도교수는 미친 녀석이라고 나무랐다.

그 미친 녀석은 함께 운동하던 대표팀 동료들이 하나둘 루지를 떠날 때도 홀로 묵묵히 훈련했다. 실제로 트랙에서 썰매를 타는 기간은 1년에 한 달. 해외 전지훈련이 전부였다. 나머지 기간은 무작정한 체력훈련의 연속이었다. 강 교수는 “트랙을 탈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한 번 탈 때마다 혼신을 다해 주행감각을 익혔다. 코너에 하도 많이 부딪혀서 저녁이면 파스 붙이고 약 바르는 게 일이었다”며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또 얼마나 아플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그래도 트랙을 탄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강 교수는 1998년 나가노에서 올림픽 국가대표의 꿈을 이뤘다. 성적은 34명 중 31위. 그때 함께 올림픽에 나갔던 이용이 현재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이다.


강 교수는 올림피언의 꿈을 이뤘다는 뿌듯함보다 성적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다고 한다. “처음에는 올림픽 출전이 꿈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아쉽더라고요. ‘트랙에서 실컷 타고 나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이 같은 갈증은 그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로 인도했다. 썰매 불모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대표팀을 지도한 오스트리아 코치의 도움이 컸다. 나가노올림픽 뒤 불과 몇 달 만에 강 교수는 인스브루크로 유학을 떠났다.

관련기사



루지를 맘껏 타려고 떠난 유학이었는데 한 달 만에 십자인대를 또 다치는 불운이 찾아왔다. 수술을 받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당시 대한루지연맹은 세대교체를 이유로 강 교수의 선수 자격을 박탈했다. “외환위기 시절 아니었습니까. 가진 돈은 3,000달러가 전부인데 그래도 뭔가 하나 이루기 전까지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박사 학위를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다. 루지 훈련할 때처럼 맨땅에 헤딩이었다. 독일어 기초부터 시작해 인스브루크대에서 스포츠매니지먼트를 전공하게 됐다. 스켈레톤과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다. 강 교수는 “공부를 막 시작하려는 시점이었는데 교수님 중 한 분이 스켈레톤을 추천하셨다. 교수님의 제자인 오스트리아 국가대표 선수가 자신이 쓰던 옛 장비를 모두 지원해줬다”고 했다. 트랙을 타자마자 막혔던 가슴이 뻥 뚫렸다. 스키장 아르바이트로 50유로를 벌고 트랙 이용료로 번 돈을 모두 쓰는 생활을 계속했다. 오전 내내 일해 어렵게 번 돈을 2분도 안 되는 주행에 모두 쏟아부었지만 행복했다. 강 교수는 이후 오스트리아 대학선수권 1위에 오를 만큼 화제를 모았다. 당시 한국에는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이 없어 오스트리아 소속으로 국제대회에 나간 적도 있다.

물론 올림픽 출전권 포인트가 걸린 투어 대회에는 항상 태극마크를 달고 나갔다. 옷과 장비에 태극기를 붙이는 일도 스스로 해야 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20위)과 2006년 토리노 대회(23위)에 스켈레톤 대표로 참가한 강 교수는 2010 밴쿠버올림픽(19위)에는 봅슬레이 선수로 나갔다. 스켈레톤은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토리노올림픽을 마치자마자 봅슬레이 도전을 선언해 약속대로 이뤄낸 결과다. 올림픽에서 썰매 전 종목에 출전한 선수는 지금까지도 강 교수 한 명뿐이다.

평창올림픽 유치에도 강 교수의 역할이 컸다. 유치위원회의 전문위원 추천을 받아 2002년 오스트리아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강 교수는 유치위와 조직위원회를 거치며 전문위원·기술위원·집행위원·스포츠디렉터 등으로 10년 넘게 평창과 함께했다. 201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실사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에는 성화 봉송은 물론이고 앞서 성화 채화단의 일원으로 그리스에 초청받기도 했다.



강 교수는 “어떻게 보면 평창올림픽이 유치에 실패할 때마다 썰매 종목은 발전을 거듭했다고 볼 수 있다. 부족한 동계스포츠 저변이 늘 탈락의 이유로 꼽혔고 이 과정에서 썰매에 대한 지원이 늘었다”고 했다. 첫 번째 유치 실패 후 강 교수는 국내 첫 썰매 실업팀 창단을 추진해 2003년에 강원도청팀이 생겼다. 현재 윤성빈의 소속팀이기도 하다.

잘 알려졌듯 강 교수는 2012년에 윤성빈을 발굴한 사람 중 한 명이고 2010년에는 대표팀 감독으로 봅슬레이의 원윤종·서영우를 뽑았다. 그는 “척박한 환경에서 좋은 선수들이 나타나줬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따는 일은 이제 우리 제자들의 몫”이라며 “사람들은 동계올림픽을 얘기할 때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피겨 외에 썰매도 얘기한다. 다른 종목들도 얼마든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썰매라는 이름으로는 안 해본 일이 없는 원로가 됐다”며 웃은 강 교수는 “욕심이라면 좋은 선수를 끊임없이 많이 배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지도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가능성이 보이는 친구들만 20명이 넘어요. 어쩌면 윤성빈을 뛰어넘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기대해주세요.” /강릉=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He is

△1973년 전주 △전주 한일고, 전주대, 연세대 사회체육학 박사 △1998년 나가노올림픽 루지 국가대표 △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2006년 토리노올림픽 스켈레톤 국가대표 △2002년 평창올림픽유치위원회 기술위원·전문위원 △2004년 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국가대표 감독 △2006년 국제루지연맹 경기위원 △2008년 아메리카컵 봅슬레이 4인승 동메달 △2010년 아메리카컵 봅슬레이 4인승 은메달 △2010년 밴쿠버올림픽 봅슬레이 국가대표 △2010년 평창올림픽유치위원회 선수위원 △2010년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 △2011년 체육훈장 백마장 △2011년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집행위원 △2012년 한국체육대 교수

양준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 태그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