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金의 초청 '썩은 올리브 가지’ 일수도... 비핵화없는 샴페인은 독배

[데스크 진단] 北, 3차 정상회담 제안

김여정 "방북 요청" 친서 전달

文 "여건되면 성사" 조건부 수용

北, 제재 완화·한미 균열 노림수

정교한 '정상회담 책략' 세워야

서정명 정치부장 vicsjm@sedaily.com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정한 표정으로 얘기를 건네고 있다. /연합뉴스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정한 표정으로 얘기를 건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오전11시 청와대 접견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파란색 파일을 들고 있다. 오빠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외교활동에 사용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직함과 국장(國章)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김 위원장의 ‘친서(親書)’라는 것을 카메라 기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계산된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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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부장은 자신을 ‘특사’라고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건네며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한을 방문해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6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댔던 북한이 ‘유화(appeasement)’ 제스처를 내보인 이유는 뭘까. 숨통을 죄어오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허물어뜨리겠다는 노림수가 숨어 있고 한미동맹에 실금을 내 남한과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꼼수도 깔려 있다. 한국이 현송월의 삼지연관현악단 노래에 취하고 남북 단일팀에 마치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착각하도록 한 뒤 조만간 핵 개발을 완성하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다. 궁지에 몰린 북한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지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징검다리 삼아 출구전략을 찾겠다는 고도의 방정식이 파란색 파일에 들어 있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은 심각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했고 문 대통령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며 섣부른 기대감을 경계했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3차 남북정상회담을 의미하는 북한의 제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제조건을 달았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나가자”며 “미국과의 대화에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북미 간에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내민 ‘썩은 올리브 가지’ 뒤에 숨은 흑심을 간파해야 하고 평창 샴페인 코르크를 너무 일찍 따는 전략적 실책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한미연합훈련 축소·폐지를 부르짖으며 언제 핵 장난을 할지 모른다. 혹여 ‘대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다가 한미동맹을 느슨하게 하거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유혹에 빠져서는 절대 안 된다. 이번 북한 고위급 대표단에는 비핵화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게 될 경우에는 비핵화 문제를 꺼내야 한다.

비핵화가 빠진 회담은 우리 운명을 북한 손에 빼앗기고 협상 주도권을 내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서울경제 펠로인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문 대통령은 북한 방문에 앞서 한미 간 협의를 해야 한다. 한미훈련 축소도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에 휘둘리지 않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디딤돌로 삼아 대북 압박 고삐를 더욱 조여야 한다는 얘기다. 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난 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북한이 올림픽 기(旗) 밑에 도발행위를 숨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북한은 2006년 올림픽 뒤 불과 8개월 후에 첫 핵실험을 했다”고 과거사를 언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1차 정상회담(2000년 6·15공동선언),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차 회담(2007년 10·4합의)에서 북한은 입에 발린 평화를 얘기했지만 여섯 차례나 핵실험을 단행했다. 16세기 냉혹한 현실정치를 경험한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모든 진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시간’은 그들의 사악한 기질을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내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그들’이 오늘날 북한이라는 점을 새겨들어야 한다. 봄나들이하는 것처럼 북한을 방문한다면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만다. 평창 이후 정교한 ‘3차 회담 책략’을 준비해야 할 때다.

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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