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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지 않고 달린 에이스, 마침내 시상대 맨 위에

■쇼트트랙 임효준 한국 첫 金

UFC 즐기는 '외유내강' 에이스

맥그레거 "의심말라"가 좌우명

스타트 라인서도 이 말 떠올려

"정말 올림픽만 보고 이겨냈다"

임효준이 지난 10일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우승한 뒤 밝은 표정으로 축하를 받고 있다. /강릉=권욱기자임효준이 지난 10일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우승한 뒤 밝은 표정으로 축하를 받고 있다. /강릉=권욱기자




어린 시절의 임효준. 잦은 부상에 고개 숙이는 날이 더 많았지만 임효준은 가장 큰 무대에서 한번에 설움을 씻어냈다.어린 시절의 임효준. 잦은 부상에 고개 숙이는 날이 더 많았지만 임효준은 가장 큰 무대에서 한번에 설움을 씻어냈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곱상한 얼굴의 임효준(22·한국체대). 그가 쇼트트랙 외에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뜻밖에 미국 종합격투기 UFC다. ‘의심하지 마라’는 좌우명은 UFC 스타 코너 맥그레거(아일랜드)의 말을 빌린 것이기도 하다. 임효준은 “맥그레거는 평소에는 너무 까불고 건방져 보이고 논란도 많이 빚지만 훈련은 정말 죽기 살기로 하는 선수로 알고 있다”면서 “그가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훈련량이 부족하거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떨어질 때 ‘의심’이라는 단어가 기어들어오는 법이라고. 당신이 완벽하게 준비했다면 그런 단어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거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임효준은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기간에도, 한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 걸린 스타트 라인에 섰을 때도 이 말을 떠올렸다. ‘의심하지 마라.’ 그렇게 시작된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 레이스. 임효준은 경기 도중 균형을 잃을 뻔한 순간에 한발 더 뻗어 이겨냈고 네덜란드의 싱키 크네흐트에 83㎝ 앞선 선두로 골인했다. 2분10초485의 올림픽신기록까지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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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번째 금메달을 선물, 양팔을 뻗으며 포효한 임효준은 11일 평창올림픽플라자에서 진행된 공식 시상식에서 당당히 맨 꼭대기에 섰다. 동계올림픽은 대부분의 메달 수여식을 경기 하루 뒤 별도공간에서 진행한다.

임효준은 여리여리해 보이는 외모와는 반대로 UFC를 즐기는 것에서 보듯 ‘외유내강 에이스’로 통한다. 일곱 번의 수술을 견뎌내고 뒤늦게 성인 대표팀에 발탁돼 첫 번째 올림픽의 첫 종목에서 바로 금메달을 따낸 스토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릴 때는 얼음이 아닌 물에서 수영을 했다. 그러나 면봉으로 장난을 치다 고막이 터지는 사고를 겪었다. 임효준은 “아직도 한쪽 귀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우연히 시작한 쇼트트랙에서 임효준은 곧바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고비마다 지독스럽게 찾아온 부상은 그를 불운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동료들도 안쓰러워할 정도였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수술대에 오른 것만 일곱 번. 빙판에 스케이트 날이 박히면서 한 번은 발목이, 한 번은 정강이가 부러졌고 넘어지면서 펜스에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허리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지금도 비 오는 날은 허리가 아주 불쾌하게 아프다. 임효준은 “수술을 받고 나서 겨우 복귀하면 다시 다치는 일이 반복됐다”면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많았는데 올림픽만 생각했다”고 전했다. “정말 평창올림픽 하나만 바라보고 이겨내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임효준이 친구 같은 어머니라고 말하는 곽다연씨는 11일 목이 완전히 쉬어 있었다. 전날 관중석에서 목놓아 아들을 응원하던 곽씨는 아들의 포효에 하염없이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아들이 큰 부상을 당했던 시절이 떠올라 감정이 복받쳤다는 그는 “(부상 때마다) 딱 하루만 실컷 울고 아들에게 웃는 얼굴을 보였다. 늘 즐겁게 이겨내자고 말했는데 그동안의 고통을 잘 이겨낸 아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에야 성인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임효준은 이후 월드컵에서 승승장구한 끝에 올림픽 금메달에까지 골인했다. 월드컵 대회 중 허리를 또 다쳤지만 임효준은 “허리 통증은 잊고 선수촌 생활을 그저 감사하게 즐기면서 레이스에 나섰다”고 돌아봤다. 남자 쇼트트랙의 2014소치올림픽 노메달 수모를 깨끗이 씻어낸 임효준은 이제 다관왕을 노린다. 13일 1,000m 예선에 나서고 결선은 오는 17일이다. 500m와 5,000m 계주도 남아 있다. 임효준은 “아직 올림픽이 끝난 게 아니다. 다시 한번 죽기 살기로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강릉=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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