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빙판과 설원·밤하늘이 최첨단 정보기술(IT)로 화려하게 물들고 있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세계 최초의 5세대(5G) 시범 서비스를 비롯해 드론, 자율주행자동차, 가상현실(VR) 등이 개막식부터 전 세계인의 시선을 붙잡으며 IT올림픽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스포츠 행사에서 통신기술은 현장의 생생함을 안방에 전달하는 데 그쳤지만 이번에는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하는 듯한 동시 체험으로까지 보폭이 넓어졌다는 평가다.
11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단체전. 한국 여자 싱글 간판 최다빈 선수가 빙판 위를 뛰어오르자 경기장 벽면을 따라 설치된 카메라 100대가 일제히 작동했다. 카메라 100대가 동시에 포착한 최 선수의 비상은 5G 네트워크망을 통해 중계방송사와 경기장 내 정보통신기술(ICT) 체험존으로 실시간 전송됐다. 약 3분간의 연기가 끝난 뒤 TV 중계화면에는 도움닫기부터 공중 동작까지 최 선수의 점프가 연속 정지 동작으로 찍혔다. 찰나의 순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하는 실감형 미디어 기술 타임슬라이스를 통해서다. 타임슬라이스는 피겨 외에 쇼트트랙·아이스하키 등에도 적용돼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특정 순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아이스하키 경기장의 경우 천장에 달린 20개의 안테나가 동작 센서를 읽고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내며 공중 묘기가 중심이 된 빅에어 경기에서도 신발에 부착된 소형 센서로 회전 각도 등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날 남자 68명이 한꺼번에 출발하는 15㎞+15㎞ 스키애슬론 경기. 5G 기술을 통해 시청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현재 위치를 실시간 파악하면서 이 선수와 가장 가까운 곳의 초고화질(UHD) 영상을 골라볼 수 있는 시스템이 시범 적용됐다. 선수들의 유니폼 등에 설치된 60g짜리 초정밀 위성항법시스템(GPS)으로 가속도와 순위·속도 등이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아직은 체험관에 한해 볼 수 있지만 5G가 상용화되면 개인 단말기를 통해 즐길 수 있다. 이 같은 서비스는 KT가 이번 올림픽에서 최초로 시범 적용한 5G 기술 덕분이다. 내년 중에 국내에서 상용화되는 5G는 현재 롱텀에볼루션(LTE)보다 40~50배 빠르고 처리용량도 100배나 많다. KT는 주요 경기장 주변에 5G 망을 구축하고 옴니뷰, 타임슬라이스, 360도 VR 라이브, 싱크뷰 등의 실감형 미디어를 선보이고 있다. 1,200명의 공연자가 발광다이오드(LED) 촛불로 평화의 비둘기를 만든 개막식 이벤트도 5G 망을 활용해 시간으로 촛불 밝기 및 점열 여부를 제어했다.
개막식 때 선보인 이른바 ‘드론 오륜기’도 첨단 IT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이벤트로 꼽혔다. 인텔의 드론 ‘슈팅스타’ 1,218대가 밤하늘에 오륜기를 만들어냈다. 개막식 때는 여건상 녹화한 영상을 보여줬는데 메달 시상식 때는 300대 드론의 일사불란한 비행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 무게가 330g에 불과한 슈팅스타에는 LED 조명이 장착돼 있어 비행과 동시에 40억가지가 넘는 색을 조합해 낼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조종사가 각각의 드론에 비행경로를 입력한 후 컴퓨터 한 대로 이를 조종한다. 이번 드론 오륜기는 ‘최다 무인항공기 공중 동시 비행’ 부문 기네스 세계 기록까지 경신하며 여러모로 화제를 낳고 있다.
평창에서 펼쳐지는 각종 IT 기술을 직접 보기 위해 방한한 일본 NTT도코모의 요시자와 가즈히로 사장은 “선수 시점의 영상을 전달하는 업로드 중심의 서비스가 가장 인상 깊다”며 “KT가 5G를 올림픽에 적용한 사례를 바탕으로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 대회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창규 KT 회장은 “이번 올림픽의 노하우와 파트너들과의 끈끈한 협력으로 5G 상용화를 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하기도 한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은 “이곳에서 우리는 혁신적인 기술을 활용해 더 좋은 스포츠와 미래가 가능하다는 올림픽의 새로운 비전을 소개한다”며 “평창을 시작으로 도쿄·베이징까지 이어지는 아시아 올림픽에서 이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