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068270)이 체외진단기기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신규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의약품과 화장품에 이어 의료기기로 영토를 넓혀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른바 ‘토털 헬스케어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그룹은 체외진단기기 사업 추진을 위해 인수합병(M&A)등을 포함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바이오기술(BT)이 차세대 격전지로 부상할 것”이라며 “글로벌 바이오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체외진단기기 전문기업에 대한 M&A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와 해외를 통틀어 체외진단기기 전문 벤처기업과 중견기업 등 20여곳 정도가 물망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셀트리온이 의료기기 시장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글로벌 투자설명회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바이오제약 업계의 글로벌 선두주자로 올라서기 위해 의료기기에도 투자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바이오시밀러를 통해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승부수가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사람의 몸을 진단해 질병을 판단하는 기술은 크게 체내진단과 체외진단으로 나뉜다. 체내진단은 신체를 들여다본 뒤 질병이 있는지 판별하는 방식이다. 초음파, 내시경,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체외진단은 혈액, 침, 대·소변 등을 통해 질병을 확인하는 기술이다. 번거롭거나 고통스러운 과정 없이 간편하면서 신속하게 검사할 수 있고 정확도가 뛰어나다는 게 장점이다.
셀트리온이 체외진단기기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내건 것은 스마트폰 대중화와 진단기술의 발전으로 체외진단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앤설리번에 따르면 지난 2014년 522억달러(약 56조원)였던 글로벌 체외진단기기 시장은 지난해 647억달러(약 70조원) 규모로 크게 늘었다. 최근에는 편의성과 정확성을 개선한 체외진단기기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향후 5년 내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 많다는 것도 셀트리온이 다양한 의료기기 분야에서 체외진단기기를 최우선으로 선정한 배경으로 꼽힌다. 체외진단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국내 기업만 마크로젠, 씨젠, 바디텍메드, 랩지노믹스, 바이오니아 등 80여곳에 달한다. 최근에는 정부도 체외진단 분야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있어 글로벌 경쟁력에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의료기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 수준의 유통망과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셀트리온이 의료기기 사업에 뛰어든다면 상당히 파급력을 불러올 것”며 “국내 의료기기 시장으로서도 거대 플레이어가 출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존 의약품 사업과 직접적인 시너지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셀트리온이 의료기기 시장에 성급하게 출사표를 내미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셀트리온은 지난 2013년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화장품 전문업체 한스킨을 인수한 뒤 셀트리온스킨큐어를 설립했지만 5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의료기기가 넓은 의미에서 바이오산업에 포함되지만 특성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철저한 준비와 검토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