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평창서 드러난 우리의 규제현실] 인텔드론에 내준 평창 하늘..."규제 지속땐 자율차·VR도 구경꾼"

비행금지구역·야간비행 등 제한 많고 로봇 배달도 금지

국내 업체들 "이대론 또다른 외국 드론만 날아다닐 것"

자율주행차도 규제에 막혀 인프라 표준 등 제자리걸음

1315A03 평창올림픽에 적용된 IT 서비스


“왜 한국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 회사인 인텔의 드론이 가장 주목받는 거죠?”

국내 드론 개발업체 대표인 A씨는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의 개막식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드론 쇼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외산 부품을 조립하는 수준에 불과했던 국내 드론 시장을 바꾸기 위해 지난 2년간 드론 소프트웨어 연구개발(R&D) 등에 수십억원을 투자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안방인 평창 하늘에 우리 드론이 아닌 외국 드론이 날아다닌 것을 보며 자괴감이 든 것이다. A씨는 “정부가 드론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육성하겠다고 말로만 떠들 뿐 드론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스스로 차 버렸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12일 정보기술(IT)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개막식에 등장한 ‘드론 오륜기’가 일반 국민들에게는 감동을 줬지만 정작 관련 산업계에는 불만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때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불렸지만 촘촘한 규제 등에 막혀 4차 산업혁명 등 글로벌 생태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ICT 코리아’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줬다는 지적 때문이다.

우선 개막식에 미국 회사인 인텔의 드론이 등장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와의 파트너십 때문이다. 인텔은 지난해 6월 IOC와 장기 기술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오는 2024년까지 올림픽 경기에 적용될 5G 플랫폼, 가상현실(VR), 콘텐츠 개발 플랫폼, 드론 기술, 인공지능 플랫폼 등을 맡기로 했다. IOC는 파트너십을 체결한 기업에 해당 분야 마케팅 등에 대한 독점권리를 부여하고 있어 우리 정부가 총괄한 올림픽 개막식에 인텔의 드론이 등장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국내 ICT 업계에서는 한국 업체가 기술 관련 올림픽 파트너사가 됐다고 하더라도 드론 오륜기와 같은 이벤트를 연출해 냈을지에 대해 물음표를 제기한다. 드론과 관련된 장밋빛 청사진만 남발할 뿐 갖가지 규제로 발전을 가로막는 현 상황에서는 드론 기술 발전의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지만 새로운 규제 신설에 골몰하고 있는 정부 조직이 바뀌지 않는 한 안방에서 다른 나라 드론이 날아다니는 광경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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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노력은 했다. 정부는 2022년까지 1조원을 투입해 국내 드론 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세계 5위, 선진국의 9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지난해 7월 발표했다. 올해 초 정부 업무보고에서도 국토·경찰·소방 등의 공공 분야에서 2021년까지 드론 3,700대의 수요를 발굴해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드론 전용 비행시험장 두 곳도 새로 만들기로 했다. 다만 이번 올림픽 개막식 이후 국내 업체들은 정부의 노력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한 드론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국내 드론 업체가 협업하는 형태로나마 개막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면 배울 게 많았을 텐데 접촉 자체가 없었다는 게 문제”라며 아쉬워했다.

현재 업계가 추산하는 국내 드론 업체 수는 1,500~3,000개다. 하지만 대다수는 중국에서 값싼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부의 육성계획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드론 한 대를 띄우려면 넘어야 할 규제가 많다는 점에서 과감한 시도가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자체 드론 개발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 항공안전법상 드론 비행은 △비행금지구역 △공항 주변(관제권) △고도 150m 이상 △행사장 등 인구밀집지역 △야간비행(일몰 후~일출 전) △가시권 밖 비행 등 제한이 많다. 미국의 유통 업체들이 이미 시범 서비스에 들어간 로봇 배달과 무인 드론 비행의 경우 유통사업자의 택배업 겸업을 금지하는 규정 때문에 막혀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시범운행 중인 자율주행차 또한 업계에서는 추가적인 규제 완화 노력이 부족한데다 산업 청사진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실제 자율주행의 기본이 되는 스마트도로·정밀도로지도 등 인프라 표준 등이 규제에 걸려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 2020년은 돼야 5,500㎞ 구간에 대한 정밀지도를 만들겠다고 최근 정부가 발표한 바 있어 업계는 계속해서 발만 구르고 있다. 본격적인 자율주행차 양산 시 자동차보험은 운전자와 제조사 중 누가 납부하고 누구에게 책임이 귀속되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다.

이번 평창에서 크게 주목받는 아이템인 VR와 증강현실(AR) 콘텐츠 또한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현재 VR·AR 체험 콘텐츠의 경우 대부분이 게임과 관련돼 있어 이 같은 콘텐츠를 출시하려면 국내의 게임물 등급 분류를 받아야 한다. 해외 유명 콘텐츠 업체와 제휴해 VR·AR 콘텐츠를 내놓으려 해도 관련 등급제에 대한 거부감으로 협업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AR·VR의 산업적 활용이 커지면서 기존 산업 규제와의 충돌, 호환성 이슈, 관련 제도 미비 등 법·제도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법 제도를 제정해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철민·서민우·강도원기자 chopin@sedaily.com

양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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