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한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서스틴베스트가 반대 의견을 냈을 때 금융투자사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서스틴베스트는 건설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보통 1배 전후라는 점을 감안해도 합병 비율 산정 시점의 삼성물산 평균 PBR(0.68배)는 역사적 저점이라는 점에서 반대했다. 삼성물산의 자산가치와 영업권·수익가치만을 고려한 권고였지만 국내 자본시장에서 서스틴베스트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곳은 없었다. ‘듣보잡’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주주행동주의’를 내세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예상치 못한 공격은 삼성을 흔들어놓았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흘렀다.
지난 2006년 국내에 첫 사회책임투자(ESG) 전문 리서치 회사로 출발한 서스틴베스트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의 기업 의사결정 참여를 유도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전파하고 있다. 기업 간 인수합병(M&A), 이사 선임, 임원 보수, 정관 변경 등 기업 의사결정과 관련해 기관투자가들에게 리서치 자료를 제공하고 전략과 투자의견을 권고하는 역할을 한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주주행동주의와 스튜어드십이 국내에 혼재돼 있다”며 “단기 차익을 노리는 주주행동주의와 장기 투자로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구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단순 번역돼 주주행동주의의 공격적인 투자 스타일과 동일시되거나 여타 정부 입김에 따라 기업 경영이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에 연금사회주의로 불리고 있다”며 “가장 시장 친화적인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오해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책임투자, 스튜어드십 코드 등 선진 자본시장에 일찌감치 도입된 자본주의 기본 원칙을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는 “국내 기업과 자본시장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저명학자나 블룸버그보다는 국내 학자나 국내 경제매체가 가장 잘 파악하고 이해도가 높지 않겠냐”며 “같은 이유로 국내 토종 자문기관이있는데 언제까지 해외 의결권 자문기관에 국내 기업의 생사를 물어볼 셈인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사회책임투자에 눈뜨기 시작할 때 류 대표는 잘나가는 ‘증권맨’이었다. 소위 상위 1%였다. 류영재 대표는 남들보다 연봉이 2배나 많았고 영업점뿐만 아니라 상품 개발부와 애널리스트까지 전천후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류 대표는 “1980년대 후반 자본시장 활황 속에서 증권 업계에 취업했다”며 “자본시장의 첨병임을 자임하며 노력해 이른 나이에 핵심 전략 지점의 지점장을 맡고 업계 최고 수익률과 실적을 기록한 적도 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영광스러운 기억도 많았지만 씁쓸함도 컸다. 그는 “14년 이상 증권사에 있다 보니 ‘우아한 카지노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며 “당시까지도 기업 회계는 정직하지 않았고 투명성은 떨어졌다”고 말했다. “실적을 높이기 위해 기업 비자금을 관리해줬고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작전에도 참여하게 됐다”며 “특히 2000년 초 근무하던 증권사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펀드가 불공정 시세 조정으로 회장까지 구속되는 사건을 접하는 순간 떠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그해 7월 막연히 금융 관련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계획으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영국 정부가 연금법 개정으로 소란스러웠던 시점이기도 했다. 같은 해 영국은 연기금을 운용하는 모든 주체는 투자 종목을 선택할 때 비재무적 요소인 ESG, 즉 환경(Environment), 사회적 문제(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했는지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류 대표는 “ESG나 스튜어드십 코드가 자리 잡은 영국도 환경과 사회문제를 고려한 투자가 최대 수익률을 올리는 데 방해가 되는 게 아니냐는 논쟁이 계속됐다”며 “ESG 고려가 재무적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며 연금법이 개정됐고 ‘투자 패러다임’까지 바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ESG를 고려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조합인데 어떻게 투자수익과 연계가 된다는 것인지 궁금증이 더욱 증폭됐다”며 “러셀 스팍스의 ‘사회책임투자 세계적 혁명’이라는 책을 찾아 읽었고 한국 자본시장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ESG가 진짜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2004년 영국 애슈리지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친 류 대표는 한국의 ESG 투자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신념으로 서스틴베스트 설립에 집중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주주 모집에 실패했다. 연기금·증권사·학계 등을 닥치는 대로 찾아 ESG를 설명했지만 모두 말렸다. 시기상조라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였다. 오히려 증권사에서는 과거 영업 잘하던 직원이 왜 저렇게 됐냐고 걱정하며 영입을 제안했다. 어렵사리 회사를 설립했지만 3년 동안 한 푼도 벌어들이지 못했다. 결국 비즈니스를 접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무렵 초등학생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다음 세대에도 이런 카지노 자본주의를 물려주기 싫다는 다짐을 했다”며 “기업범죄와 환경훼손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금융 선진국이 됐던 영국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정착시켜야 다음 세대가 행복한 사회가 되고 금융이 선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 역시 국내에서 단순 번역해 흔히 ‘주주행동주의’로 통용되지만 인간은 환경을 잠시 관리하고 살다가는 스튜어드(집사)로서 잘 보존해 후세대에 넘겨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류 대표가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국민연금의 기금에는 노동자·주부·노인 등 모든 국민의 자금이 들어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기업에 근로자들의 복지나 권익 향상, 협력업체의 상생경영 등을 요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투자 대상 기업 한 곳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반 오너로서의 이익과 비용을 따지는 ‘유니버설 오너(universial owner)’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늘 주장해오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관치’에 휘둘릴 경우 ‘연금 사회주의’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과 관련해서도 오히려 관치를 피하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류 대표는 “과거 정부가 국민연금을 이용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관여한 게 관치”라며 “다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수준으로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가칭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만들어지면 스튜어드십코드위원회·수탁자위원회 등으로 구분, 상설화시켜 전문성을 높이고 정보 비대칭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의결권 행사의 방식과 범위를 시장에 맡겨 투명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사사건건 경영에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에도 주주행동주의를 폭넓게 해석한 오해라고 설명했다. 류 대표는 “주주 행동주의는 기업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기업과의 적대적 대결구도를 통해 단기 투자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라며 “장기적으로 기업의 문제점을 해결해 수익을 점증적으로 높이는 방식이 스튜어드십 코드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기업과 투자자를 비공식적으로 해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한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대표적으로 폭스바겐 매연 배출량 조작 사건은 ‘ESG’ 사건의 종합선물세트”라며 “디젤차 환경규제가 까다로워지니 매연 배출량을 조작한 것인데 한 달 만에 주가가 40% 폭락하고 소비자 신뢰까지 무너졌다”고 말했다. 폭스바겐에 스튜어드십 코드 펀드가 개입했다면 기업은 이미지 훼손 없이 문제 원인을 해결했고 투자자는 수익률을 챙겨 모두 윈윈했을 것이라는 논리다. 실제 서스틴베스트가 관리한 ESG 투자 가능 종목군의 지난해 평균 수익률은 20.05%로 코스피(18.13%)보다 높았다. 류 대표는 “자본시장과 국민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
He Is...△1960년 서울 △1979년 서울 중앙고등학교 졸업 △1983년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2004년 영국 애슈리지경영대학원 Finance MBA △1997년 동방페레그린증권 지점장 △1998년 현대증권(현KB증권) 지점장 △2012년 헤르메스 에쿼티 오너십 서비스 수석고문 △2017년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경제분과 위원 △2017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2018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위원회 위원 △2006~현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