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싱크탱크에 자율을 許하라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도중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 해설자의 한국 비하 발언을 접하면서 한 세기 전의 역사적 사안들로 가슴이 아린다. 요컨대 ‘일본의 강점기가 한국의 발전에 중요한 모델이 됐다’는 망언이다. 이러한 ‘식민지 근대화론’은 우리 내부에도 일부 존재한다. 산업화와 경제 성장 과정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추격 전략의 대상이었을지언정 결코 바람직한 모델은 아니었다.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로 그들 내부에 누적된 폐해가 한국 안에 여전히 잔존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일제가 러일전쟁 후 대한제국을 중국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경제를 식민지 경제로 재편해 자원 수탈과 재원 조달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도였다. 그 추진 주체가 바로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모방해 1908년 국책회사로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였다. 동척은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으로 식민지 경영에 필요한 대규모의 자본을 형성했다. 조선의 값싼 노동력과 원료를 활용하고자 초기에는 비료공업과 면방직공업 시설을 세웠으며 중일전쟁 후에는 전쟁 물자 생산을 위한 군수산업에 집중했다. 명목상 주식회사였던 동척은 수익성이 매우 높았음에도 나중에는 일본의 본심에 따라 조선총독부에 흡수된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동척보다 2년 앞서 설립된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다. 만철은 러일전쟁 승리로 할양받은 철도와 부속지를 토대로 만주 경제를 지배했다. 1920년대에는 그 규모가 일본 전체 세입의 4분의1에 달했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에서 거대한 사업을 벌이려면 자본뿐 아니라 탁월한 경영 리더십이 필수였다. 이를 가능하게 한 조직이 바로 만철 내부의 조사부였다. 당대의 엘리트로 구성된 조사부는 지역의 산업·경제·시장·자원 탐사는 물론 국제 정세와 안보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연간 수천 건의 보고서를 생산해 낸 싱크탱크였다. 이 조직은 패망 후에도 대내외 경제정책에 관여하면서 일본 근현대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거대한 제국을 이룬 나라들은 싱크탱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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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경영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나라의 싱크탱크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는 세종의 집현전과 정조의 규장각이라는 빛나는 싱크탱크의 전통을 가진 나라지만 그 명맥을 이어야 할 오늘날의 국책 연구기관들은 1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정책 제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지, 혹은 5년 단위로 바뀌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고 있지는 않는지 의구심이 든다.

동북아에서 우리가 새로운 질서를 주도해나가려면 대안은 두 가지다. 우선 국책 연구기관들에 혼이 담긴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자율권을 허용해야 한다. 인건비로 옥죄는 대신 자존감을 느끼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다음은 특정 정파나 기업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운 민간 싱크탱크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제국의 경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국·중국·일본의 ‘혁신 삼국지’에서 패퇴하지 않는 길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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