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사리원((沙里院)’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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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프랑스 패션 업체 입생로랑은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내건 향수를 출시했다. 그러자 스파클링와인 생산지인 샹파뉴의 제조업자들이 상표권 침해라며 들고 일어났다. 영어식 발음인 샴페인은 샹파뉴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소송전으로 비화한 끝에 법원에서는 지명 자체가 가진 원산지로서의 명성과 이미지를 훼손한다며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입생로랑은 결국 브랜드를 ‘이브레스’로 변경하고 일부 디자인까지 바꿔 제품을 출시해야 했다.


지명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만큼 브랜드 가치가 높아 누구나 눈독을 들이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업체 간에 법적 공방이 벌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미국의 한 유통업체는 몇 해 전 ‘순창 고추장’을 버젓이 상표로 등록해 중국산 제품으로 속여 판매해오다 법원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순창이 한국 지역명이 아니라 ‘순수한 창(Pure Spear)’이라며 새롭게 창조한 단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 법원은 순창이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고을이자 한국인들에게 자연스레 지명으로 연상된다는 이유로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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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혼란을 차단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지리적표시제(GIS)’를 운영해왔다. 상품의 품질이나 명성이 특정 지역의 지리적 근원에서 비롯되는 경우 함부로 상표권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법적 권리가 부여되는 제도다. 높은 인지도와 오랜 생산 역사, 자연환경 등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하는데 2002년 전남 보성녹차가 1호로 등록된 후 현재까지 모두 180여건에 이르고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횡성한우나 이천쌀·의성마늘·성주참외·제주한라봉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과 대전의 음식점이 ‘사리원’이라는 간판을 놓고 벌인 소송에서 대법원이 독점적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북한 황해도의 지명인 사리원(沙里院)이 교과서나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며 ‘현저한 지리적 명칭’은 상표등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 고유의 불고기와 냉면을 둘러싼 싸움에 조상님들이 혀를 찰지도 모를 일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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