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Science&Market] 인사동 김명장씨 잔혹사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

인건비 높지만 생산성 낮은 韓

기술력 믿다가 주력 산업 무너져

새로운 시대 걸맞은 전략 찾아야



서울 인사동에서 한식다과점인 ‘칠보단장’을 운영하는 김명장씨는 경력이 50년 된 이 분야의 장인이다. 가게는 유과의 표면을 일곱 가지 무지개 빛깔로 장식할 수 있는 신토불이 재료의 개발에서부터 전통문양을 유과 표면에 입히는 기술, 그리고 천연의 맛과 아삭한 식감으로 유명해서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었다. 그래서 김씨는 종업원 수를 대폭 늘리면서 칠보단장 2호점을 낼까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상점의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 걱정하던 중 미국 동부에 유학을 가 있는 손녀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손녀는 자기가 미국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갔는데 거기서 할아버지가 만든 것과 똑같은 유과를 코리안 크리스피 케이크라고 내놓았다며 할아버지가 이제는 미국에 수출까지 하느냐고 물어왔다는 것이다. 그런 적이 전혀 없는 김씨는 너무 놀란 나머지 평소에 친분이 있는 필자에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문의해왔다. 필자는 이 코리안 크리스피 케이크는 이미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다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줬는데 김씨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조차도 없는 이야기였다.

김씨가 만든 것과 똑같은 유과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브레드 앤드 초콜릿이라는 제과점에서 만들었다. 김씨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비법인 맛과 식감을 흉내 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브레드 앤드 초콜릿은 IBM의 셰프 왓슨이라는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레시피를 받고 있고 이 앱은 IBM의 인공지능인 왓슨과 클라우드로 연결돼 있어 앱에 크리스피 케이크라고 입력하면 1초 만에 무려 전 세계의 크리스피 케이크에 관한 100가지 레시피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유과 표면의 문양을 입히는 것은 김씨가 20여년에 걸쳐 개발한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흉내 낼 수 있었을까. 해당 제과점은 표면문양 장식을 3D 프린팅으로 만들며 김씨의 기술은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고 있지 않아서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 김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만들면 이 유과가 미국 전역으로 판매될 수 있느냐고 궁금해했다. 유과를 로봇이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미국 전역에 유통하는 이 제과점은 얼마나 많은 대리점이 있을까. 대리점은 없다. 대신 아마존과 알리바바 플랫폼에 제품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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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앱은커녕 컴퓨터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김씨로서는 이런 설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 자기의 경쟁상대로는 대전의 최달인씨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 태평양 건너 샌프란시스코의 한 제과점이 자기의 경쟁 상대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김씨는 보스턴에서 열린 글로벌 트래블쇼에서 한과 디저트로 소개돼 인기가 폭발하면서 자신의 제품이 우연한 기회에 세계에 노출된 것이 잔혹사의 시작이었다. 김씨는 자기도 모르게 모든 것이 연결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게 된 것이고 결국 속수무책으로 가게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다. 현재 우리가 심각하게 겪고 있는 주력 산업의 침체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전가의 보도’와 같이 사용해왔던 3차 산업혁명 시대형 생산공정 기술은 이제 경쟁국에서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보편 기술이 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급격히 진입하면서 로봇과 AI·빅데이터로 무장한 경쟁국 업체에 비해 우리의 인건비는 높고 생산성은 낮다. 우리나라 제조업체 중 플랫폼 기업은 없다. 만들기만 하면 불티나게 팔렸던 좋았던 시절은 이제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인사동과 삼청동에서 하나둘씩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를 보면서 또 전국의 산업단지를 다니면서 하나둘씩 퇴출하는 중소기업을 목도하며 과연 저들은 완전히 바뀐 게임의 법칙을 알고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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