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스타트 할 때 이렇게 자세 잡잖아. 이렇게.”(최민정)
“아이고, 내가 너 경기 때마다 얼마나 가슴 떨리는 줄 아니? 자세히 볼 정신이 아니야.”(어머니 이재순씨)
사진기자의 포즈 요청에 모녀는 어색해하는 듯하다가 이내 서로 자세를 봐주며 재밌어했다. 2018평창올림픽 폐막을 하루 앞둔 24일 강원 평창의 P&G하우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최민정(20·성남시청)은 “엄마는 편지는 물론이고 휴대폰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도 정말 마음이 담긴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보내주신다”며 엄마에게 그윽한 눈빛을 보냈다. 최민정은 어머니 이씨의 손편지를 올림픽 기간에 틈틈이 꺼내보며 2018평창동계올림픽 한국 선수단 중 유일한 2관왕(쇼트트랙 1,500m·3,000m 계주)에 올랐다. 최민정은 첫 경기인 500m에서 불의의 실격을 당하고도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1,500m에서 선보인 막판 아웃코스 추월은 이번 올림픽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힌다. 최민정은 “컨디션이 정말 좋을 때는 한 바퀴(111.12m)를 8초2~3 정도로 탄다”고 했다.
운동하면서, 그리고 운동시키면서 가장 속상했을 때를 딸과 어머니에게 물었다. 최민정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6위를 하고 난 뒤 많이 힘들었다. 그전에 계속 정상에 있다 보니 그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 같은데 주변의 기대와 그로 인한 압박을 이겨내는 법을 잘 몰랐다. 돌아보면 그때까지는 약간 기계처럼 탔다”고 했다. 그는 “그때를 계기로 마인드가 바뀐 덕에 이번 올림픽은 정말 다르게 임했다. 스타트 전에 고개를 들어 경기장 분위기를 느끼면서 기분 좋은 상태로 경기했다. 주변의 4관왕 기대와 비교하면 딱 절반만 달성한 건데 즐겁게, 재밌게 탔기 때문에 전혀 후회가 남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엄마는 딸의 학창시절로 시계를 되돌렸다. “초등학교 2~3학년 때 운동할지 공부할지 결정하라고 채근하니까 그 어린 애가 ‘엄마, 나 1주일만 시간을 줘’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딸은 결국 운동을 택했고 저는 그때부터 뒷바라지에 ‘올인’한 거죠.” 최민정은 중학생 때 경기도 집에서 나와 훈련장과 가까운 서울의 오피스텔에서 생활했다. 어머니 이씨는 “하루는 훈련을 보러 가봤는데 늦은 밤 시간에 혼자 아무렇지 않게 링크를 돌고 있더라. 그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최민정의 운전기사 노릇도 한 어머니 이씨는 지난 10년간 25만㎞를 주행했다고 한다. 최민정은 “초등학교 때 운동일지 공부일지를 놓고 1주일 내내 고민을 거듭했는데 더 재미를 느끼는 쪽을 택했다. 엄마가 전적으로 제 선택을 존중해주셨기에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최민정은 쇼트트랙계에서 한 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로 꼽힌다. 탁월한 운동능력과 스케이팅 지능 말고 지금의 최민정을 있게 한 또 하나 두드러지는 능력은 몰입이다. 최민정은 “저는 뭔가를 하면 무조건 한 가지밖에 못 한다. ‘멀티’가 안 된다”며 웃어 보였다. “대표팀 후배인 (이)유빈이랑 (김)예진이도 그러더라고요. 언니처럼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뭔가에 몰입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요. 심지어 휴대폰 메신저를 보낼 때도요.”
최민정은 “안방올림픽을 통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한 단계 성장했음을 느낀다. 여기서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는 말로 4년 뒤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각오를 대신했다. 그는 “우선 엄마랑 여행갈 계획부터 잡고 싶다. 엄마는 스위스 가보신 경험을 자주 들려주고는 했는데 듣다 보니 저도 가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이씨는 “이제 막 스무 살 넘은 딸이 너무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모습은 안쓰럽다. 어떤 등수든 저한테는 누구보다 예쁜 딸”이라며 지그시 최민정의 손을 잡았다.
/평창=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