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감동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최고 주역은 누가 뭐래도 이승훈(30·대한항공)이다. 이승훈은 지난 2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추가해 개인 통산 5번째 올림픽 메달(금2·은3) 기록을 세웠다. 아시아 빙속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으며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사례도 이승훈이 처음이다. ‘빙속영웅 이승훈’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한 화려한 피날레였다.
이승훈을 평창의 주인공으로 꼽는 이유는 단지 실력과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매스스타트에서 지치지 않는 체력과 무서운 뒷심, 그리고 후배 정재원의 조력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한판 승부를 보여줬다. 16바퀴를 도는 레이스에서 16명 선수 중 후미에 자리해 기회를 엿보던 이승훈은 막판 ‘이승훈 타임’을 연출했다. 14바퀴째 8위, 15바퀴째 2위로 올라선 그는 마지막 바퀴에서 앞서 달리던 바르트 스빙스(벨기에)를 따돌리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번 대회 주력 종목이 아닌 1만m 등에 장거리 명맥 유지를 위해 출전을 강행한 ‘맏형’ 이승훈은 레이스 내내 꾸준히 앞쪽에서 다른 선수들의 힘을 빼주는 역할을 마친 정재원의 손을 들어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승훈은 지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깜짝’ 등장해 5,000m 은메달, 1만m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냈다. 빙속 장거리 장거리 종목에서 아시아 선수가 처음으로 이뤄낸 쾌거였다. 4년 뒤 소치 대회에서는 아시아 남자 선수 최초로 팀추월 메달을 따냈으며 이번 대회에서는 팀추월 은메달에 이어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번에 신설된 매스스타트 종목에서는 ‘초대 금메달리스트’다.
17일간의 열전을 치른 대한민국 선수단은 1988서울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의 안방 올림픽으로 열린 이번 대회에서 종합 7위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수확한 메달은 금 5개, 은 8개, 동 4개다. 금메달은 애초 기대치였던 8개에서 3개가 못 미쳤지만 합계 17개는 우리나라의 역대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종전 최다는 2010밴쿠버 대회에서 따낸 14개였다. 내용 면에서도 괄목할 만했다. 이승훈은 3회 연속 올림픽 출전에서 총 5개 메달을 획득하는 대기록을 세웠고 쇼트트랙에서는 최민정의 금메달 2관왕을 포함해 6개(금3, 은1, 동1)의 메달을 수확했다.
미주·유럽 국가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컬링·봅슬레이·스켈레톤 종목에서도 아시아 최초 메달이 쏟아졌다.
특히 컬링은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처음과 끝을 맡으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경북 의성을 대표하던 여자 컬링 대표팀 ‘팀 킴’은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올림픽 결승에 진출해 폐막일인 25일 은메달을 획득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어진 봅슬레이 4인승 경기에서는 대표팀 원윤종·서영웅·전정린·김동현이 1~4차 주행 합산 3분16초38로 은메달을 따내 평창올림픽 한국선수단의 마지막 값진 메달로 기록됐다.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에서 봅슬레이 메달을 목에 건 4인승 대표팀은 세계랭킹이 평창올림픽 출전팀 가운데 최하위인 50위까지 떨어졌으나 강도 높은 과학 훈련으로 기적을 이뤄냈다.
이보다 앞서 15일에는 윤성빈이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 설상 종목 첫 올림픽 메달이자 아시아 썰매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한국 스키 사상 첫 메달도 수확됐다. ‘배추보이’ 이상호는 24일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강릉=서지혜기자 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