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채금리 상승으로 하락 압박을 받던 주식시장이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던진 ‘관세폭탄’에 떨고 있다. 특히 미국의 보복관세가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에 철강뿐만 아니라 주요 수출주들이 동반 하락했다. 미국의 압력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전반적인 대미 수출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우리나라의 대중 중간재 수출 규모가 감소하는 등의 연쇄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며 증시는 힘을 잃었다. 여기다 트럼프의 수출확대 정책이 달러 약세를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은 엔화·유로화 등을 강세로 이끌고 있다.
2일 코스피지수는 전일보다 1.04% 하락한 2,402.16에 장을 마감했다. 전일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철강주가 대거 하락했다. 대장주인 POSCO(005490)가 전일 대비 3.6%, 화인베스틸(133820)과 동국제강이 각각 5.92%, 5.12%씩 급락했다. 세아베스틸(001430)과 현대제철(004020)도 3% 안팎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철강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으로까지 관세 규제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수출주 전반이 약세를 기록했다. 대표적인 수출주인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차(005380)가 이날 각각 2.21%, 3.41%씩 하락했다. 최근 1개월간 외국인투자가들이 삼성전자 주식만 1조원 가까이 팔아치우는 등 팔자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악재가 나타난 셈이다. 선승범 유화증권 연구원은 “정책 불확실성은 수출입 경기뿐 아니라 앞으로 증시에서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세폭탄은 아시아 증시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전일 대비 2.5% 하락했다. 철강업체인 JFE홀딩스가 2.8% 떨어졌고 혼다와 소니가 각각 3.78%, 1.23% 하락했다. 특히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달러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달러당 105엔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반면 미국이 직접적인 타깃으로 지목한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는 0.59% 하락하는 데 그쳤다.
수출 기업들은 트럼프의 관세폭탄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전체 수출이 설 연휴로 조업일수가 줄었음에도 16개월 증가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대미 수출은 10.7%나 줄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판매 감소와 스마트폰 신제품 대기 수요, 반도체 제조용 장비와 항공기·부품 수입 증가까지 겹치면서 대미 무역수지 흑자도 전년보다 76.9% 급감했다.
심혜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해 전체로는 수출이 전년 대비 약 10%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면서도 가장 큰 리스크로 미국발 무역분쟁을 지목했다. 미국의 통상압력은 한국의 대미 수출에 타격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연쇄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다. 심 연구원은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에 따른 한국의 대중 중간재 수출 감소, 중국 경기둔화로 인한 내수 위축과 전 세계 교역이 둔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가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점유율 확대로 이어지면 다시 한국이 보호무역조치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관세폭탄의 여파가 예상보다 미미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박희찬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에 대해 중국의 보복이 뒤따를 수는 있지만 미국의 취약한 제조업 기반, 유럽의 견제와 중재 등을 감안하면 무역 분쟁이 확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중국의 전체 수출에서 철강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대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국의 관세가 중국 경제에 미칠 영향도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증시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결국 한국 증시는 무역 분쟁과 관련된 업종이 하락을 주도하겠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슈인 만큼 매도세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