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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손이천의 경매이야기] 공정한 경쟁으로 투명하게 작품 거래...'열린 시장' 자리매김

<미술경매 20년>

근대 최초 경매회사는 1922년 '경성미술구락부'

1998년 설립된 '서울경매'부터 오늘날 형태 갖춰

케이옥션 설립후 급성장...박수근 작품 등 시장 달궈

작가·화랑·경매회사 협력해 미술산업으로 도약해야

2005년 11월 열린 케이옥션 첫 경매에서 7억1,000만원으로 당시 최고가에 낙찰된 박수근의 1965년작 ‘나무와 사람들’. 세로 30.5㎝, 세로 20㎝의 하드보드에 유채로 그린 자그마한 그림이지만 한국적 정서를 응축한 수작으로 꼽힌다. /사진제공=케이옥션2005년 11월 열린 케이옥션 첫 경매에서 7억1,000만원으로 당시 최고가에 낙찰된 박수근의 1965년작 ‘나무와 사람들’. 세로 30.5㎝, 세로 20㎝의 하드보드에 유채로 그린 자그마한 그림이지만 한국적 정서를 응축한 수작으로 꼽힌다. /사진제공=케이옥션


연초가 되면 으레 미술시장에 대한 각종 통계와 분석결과가 쏟아진다. 전년도 국내 시장의 규모부터 화랑과 경매회사 등 미술시장의 주체별 시장 점유율이 집계돼 수치로 드러난다. 최고가 낙찰작, 작가별 거래 총액, 낙찰률, 평균 거래가격 순위 등 수천 점의 작품이 평가대에 오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최근 서울경제신문에서 발표한 ‘미술경매시장 20년 결산’은 우리나라 미술시장, 특히 경매시장을 총정리한 자료였다. 올해가 우리나라 최초의 경매회사가 설립된 지 20년 되는 해이기에 더욱 의미 있다.

그러나 잠깐, 현대적 회사로서의 체계와 형태를 갖춘 경매회사는 2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미술품 경매회사는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중구 남산동 2가에 설립된 ‘경성미술구락부’다. 1905년경 고서, 서화, 도자기 등 골동품 매매가 시작됐고 1920년대 이르러 전국적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체계적인 유통의 필요성을 느낀 고미술상들이 친목 도모를 겸해 설립한 것이 바로 경성미술구락부였다. 특히 을사조약 이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고미술품을 도굴하고 밀거래하며 시장이 음성적으로 변질되자 이를 막고 투명한 유통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도 적지 않았다.

주식회사로 설립된 경성미술구락부는 창립 당시 총 85명이 주주로 참여했다. 그중 고미술상은 18명, 한국인은 우경 오봉빈이 유일했다. 많게는 연간 24회 적게는 4회 정도 경매가 실시됐다고 한다. 그중 규모가 큰 경매일 경우 도록도 만드는 등 ‘경성미술구락부’는 미술품 거래의 활성화와 건전한 유통체계를 세우는 역할을 하며 1945년까지 지속됐다.


다시 돌아와서, 오늘날과 같은 미술품 경매의 시작은 1998년 설립된 서울경매부터다. 서울경매(서울옥션(063170)의 전신)는 2000년 5월 실시한 경매에서 김환기의 100호 작품 ‘무제’를 3억9,000만원에 낙찰시키며 그 당시 박수근의 ‘집골목’이 가지고 있던 1억9,800만원의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는 등 미술시장의 기록을 세워갔지만 눈에 띄는 성장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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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5년 케이옥션 설립 후, 양사는 본격적인 경쟁 체제에 돌입하며 미술시장은 가파른 성장세에 돌입한다. 2004년에 양사 합산 89억원 정도였던 시장규모가 2007년에는 1,856억원의 낙찰총액을 기록해 3년 새 20배가 넘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며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최고점을 찍게 된다. 케이옥션은 2005년 11월 열린 첫 경매에서 박수근의 ‘나무와 사람들’을 7억1,000만원에 낙찰시키며 최고가를 경신했고, 48억이 넘는 낙찰총액을 기록하며 단일경매로는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그 후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이 25억원에, 2008년 6월에는 국내 미술 시장에서 처음으로 반 고흐의 작품 ‘누워있는 소’가 출품돼 29억5,000만원에 낙찰되는 등 경매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2008년 하반기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양사는 엎치락뒤치락 최고가 경신 레이스를 이어가며 국내 미술시장을 견인하며 경매의 역사를 써갔다.

안개 속에 있던 미술시장이 수면 위로 떠올라 숫자로 기록되고 이슈화하고 사람들 입에 회자 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년이다. 경매회사가 생기기 전 미술시장은 주로 화랑을 통해 한정된 사람들끼리 거래가 이뤄지는 ‘닫힌 시장’이었던 데 반해, 경매는 누구나 공개경쟁을 통해 작품을 살 수 있고 판매 과정과 결과가 공개되는 ‘열린 시장’이다. 그렇기에 경매를 통해 미술시장의 수치화와 통계화가 이뤄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을 뿐 아니라 뿐 미술시장이 투명성과 공정성을 갖추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영화판이 영화시장을 지나 영화산업이 되었던 것처럼 미술시장도 하나의 ‘산업’으로 불리는 날이 올 것이라고.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술판을 벗어난 지금의 미술시장이 미술산업이 되는 그날을 그려본다. 이를 위해서는 컬렉터, 작가, 화랑, 경매회사, 아트페어 등 미술시장을 이끌어가는 각 주체의 노력뿐 아니라 정부와 관련 기관의 효과적인 정책과 대화, 협력이 필요하다. 시장은 통제와 개입이 아닌 자율성과 자생력을 바탕으로 할 때 건전하고 건강하게 성장,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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