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펼쳤던 대여공세의 3가지 키워드는 ‘사·자·방’이었습니다. 사대강, 자원개발, 방산비리죠. 세 가지 사안에 대해 감사원 감사와 국정조사 등을 실시했고 비리와 졸속 추진 등이 드러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원외교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방어를 거의 하지 않았죠. 박근혜 정권이 자원개발 카드를 야당과의 협상 전략에서 ‘빅딜’의 카드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사·자·방’ 중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자원개발입니다. 그만큼 공세를 가하기 취약한 사업이라는 뜻이죠. 짧게는 5년, 길게는 15년이 지나야 사업의 성패 여부를 알 수 있지만 당장 손실을 보고 있다면 정치권의 비판을 피하기 쉽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부터 멈춰선 자원개발, 문제만 있었던 것일까요? 전문가들 대다수는 무리하게 진행했던 이전 정부의 과오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각국이 펼치는 자원 전쟁에 한시라도 빨리 참여해야 한다는 조언을 합니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와 정치권은 해외자원개발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공기업의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요. 광물자원공사의 해외자원개발 직접투자를 제한하기로 한 것입니다. 광물자원공사에 이서 가스공사와 석유공사도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선 해외자원개발 혁신 태스크포스(TF)가 가스공사의 캐나다 지역 광구 3곳과 추가로 1~2곳 정도의 사업에 대해 ‘철수’를 권고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광물공사와 달리 가스공사에 대해서는 부실 광구만 정리하는 선에서 구조조정 강도를 완화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석유공사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가스공사와 통폐합을 하는 방안, 자원개발 기능을 민간으로 이전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죠. 이같은 공기업의 자원개발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도 많지만 자원개발 공기업의 손발을 묶고서는 4차산업혁명의 ‘원료’가 될 자원 확보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제기되고 있습니다.
■IMF 당시 자원외교와 닮은 현재…교훈은 ‘존버’도 필요=자원개발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에서 철수를 했던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죠. 외환위기가 덮치자 한국전력과 한국석유공사 등 공기업은 해외자원개발 지분을 서둘러 팔았는데요.당시로서는 구조조정이었지만 급하게 팔다 보니 제값을 못 받다고 해외 각국에 팔려나가 글로벌 기업들의 배만 불렸죠. 호주의 유연탄과 미국과 캐나다의 우라늄 광산이 대표적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전과 국내 민간기업으로 구성된 벵갈라 컨소시엄은 지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해당 사업 지분 7.5%를 팔았습니다.
한전은 사업 조정이 목표였고 현대 같은 민간업체는 자금 수지 개선이 급했는데요. 벵갈라 유연탄광은 지난해 기준으로 850만톤을 생산했습니다.. 매각 이전 지분 7.5%를 감안한다면 연간 63만8,000톤의 유연탄이 국내로 들어왔거나 해외에 팔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유연탄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요. 발전연료 중 비중이 가장 높은 유연탄 가격은 2015년 톤당 57.56달러에서 2016년 66.03달러, 2017년 88.30달러까지 올랐다습니다. 한국전력도 2000년 사업구조 개편의 이유로 호주의 베이스워터 유연탄광의 지분 5%를 전량 매각했습니다. 베이스워터와 벵갈라에서 생산이 가능했던 150만톤의 가격을 지난해 기준 톤당 88달러로 환산하면 1억3,200만달러입니다.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라늄 자원개발 사업도 구조조정 논리에 따라 성급히 사업을 철수한 사례로 분류됩니다. 한전은 1999년 개발단계로 진입했던 캐나다 시가레이크 우라늄 광산의 지분 2%를 매각했는데요. 청산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던 시가레이크 우라늄 광산은 우리나라가 발을 뗀 후 15년 뒤 상업생산을 시작했고 2016년 기준으로 7,947톤이 생산됩니다. 공기업이 발을 떼자 민간기업 역시 해외자원개발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LG상사는 IMF 위기 당시 칠레 로스펠럼브레스 광산을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에 투자 금액의 2배를 받고 팔았는데 당시에는 “잘 팔았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인수한 일본 기업들이 추가 투자해 연간 생산량만 75만톤에 달하는 동광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열풍이 불 때 쓰였던 소위 ‘존버’, 즉 긴홉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이라고 강조합니다. 그 사례가 석유공사가 보유했던 영국 북해 캡틴 광구죠. 1999년 감사원은 석유공사가 1996년 인수한 캡틴 광구 투자가 막대한 손실을 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석유공사는 이 광구를 보유했고 2011년 10월에 투자비 대비 2억3,000만달러(약 2,600억원) 수익을 남기고 팔았죠.
■해외는 현재 자원외교 전쟁 중=우리만 손해를 본 게 아니죠. 고유가 시대에 자원개발에 뛰어들었던 중국과 일본도 손해를 봤습니다. 우리나라 해외자원개발 정책의 ‘잃어버린 5년’이 시작된
지난 2013년 12월. 그럼에도 중국은 다국적 연합군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제외한 지역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평가되던 브라질 리브라 광구의 개발권을 따냈습니다. 지분은 20%로 브라질 국영기업 페트로브라스(40%)를 제외하면 글로벌 오일메이저인 셸(20%), 토탈(20%)과 어깨를 견주는 수준. 이듬해에는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이 페트로브라스 소유의 페루 석유·가스 광권을 24억달러(약 2조6,0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같은 해 중국 시노펙도 러시아 국영 루크오일이 가지고 있던 지분 50%를 인수해 카자흐스탄 카작 원유개발 프로젝트를 100% 자회사로 흡수했습니다. 일본도 2014년 미쓰비시가 미국 자원개발 업체 애너다코로부터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해상광구 지분 20%를 사들였고 그해 아베 신조 총리의 방문을 기해 일본의 주요 자원업체들은 멕시코 자원시장 탐사·개발 운영권도 확보했습니다. 예산을 보면 우리가 자원 개발을 사실상 손 놓고 있었다는 게 명확해집니다. 일본 정부는 2014년 642억엔(약 6,398억원)이었던 해외자원개발 예산을 2017년 762억엔(7,687억원)까지 끌어올렸고 같은 기간 우리 정부는 2,006억원(성공불예산 기준)이었던 예산을 삭감했다가 지난해 1,000억원 수준으로 깎았습니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해외자원개발을 시작한 지 40년이 됐지만 본격적인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것은 10년 남짓”이라며 “아직도 한국의 자원공기업은 선순환 구조가 갖춰지지 않은, 꾸준한 투자를 필요로 하는 인생의 청소년 시기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자원외교 성공사(史)의 중심엔 자원 공기업이=일본과 중국도 정부 주도의, 즉 공기업이 나서 자원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멘땅에 헤딩’ 하는 탐사, 개발 작업에 나서기엔 경제적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공기업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가 성공했던 자원외교 성공사에도 공기업의 역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석유공사는 지난 1994년 8월 베트남 정부의 광구 분양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후 SK와 공동 평가 및 입찰그룹을 구성해 그해 10월 입찰에 참여했죠. 경쟁자는 엑손모빌·셰브런 등 세계 굴지의 석유회사. 입찰 전망은 어두웠지만 끈질긴 노력 끝에 석유공사와 SK로 이뤄진 ‘팀코리아’는 광권을 획득해 1998년 9월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이는 2003년 세계 최대 유전으로 선정된 바 있는 베트남 15-1광구입니다. 15-1광구는 2003년 10월 첫 원유생산 개시 이후 투자비 1억달러를 1년 내 회수하고 현재까지 총 15억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트남 15-1광구를 비롯해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카타르 육상광구, 미얀마 가스전 등 대부분이 자원개발 3사로 불리는 가스·광물·석유공사가 ‘깃발’을 들고 민간기업의 지분 참여를 도왔습니다. 2015년 GS에너지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육상생산광구 조광권 지분 3%를 취득하는 과정에서도 자원개발 공기업의 역할이 여실히 드러났는데요. 당시 나완배 GS에너지 부회장은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광구에 GS에너지가 참여할 수 있게 된 데는 정부와 석유공사의 적극적 지원과 협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GS에너지는 입찰 과정에서 기술 및 상업성 심사, 기술 실사 등을 받으며 토탈·BP·쉘 등 글로벌 석유 메이저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는데 이 과정에서 석유공사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급격하게 민간 주도의 해외자원개발로 넘어가면 산유국이나 해외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입을 모읍니다. 국내 민간기업이 독자로 나서 자원개발에 성공한 이력(Track Record)이 부족하다는 것인데요. 국내 자원개발 대표 기업인 SK이노베이션과 포스코대우를 보면 포스코대우의 경우 미얀마 가스전과 오만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의 경우 가스공사와, 페루 8광구와 베트남 11-2광구는 석유공사와, 호주 나라브리 유연탄의 경우 광물공사와 손을 잡았고요. SK이노베이션도 올해에서야 중국 남중국해에서 처음으로 독자 운영권을 갖고 원유탐사에 성공했습니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기업이 주도하는 석유개발과 정책지원은 한국 정부가 석유개발에 대한 투자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강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공기업이 손을 뗄 경우 한국의 자원개발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IMF 경제위기 이후 민간기업들의 사업 매각 등으로 1990년대 말 해외석유개발 사업은 절반 이상 떨어져나갔다”며 “버틸 수 있는 힘과 기술력은 민간기업이 공기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