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어둠의 시대, 죽음의 그림자 포착한 천재시인 기형도"

■기형도문학관, 29주기 추모행사

절망과 탄식, 온기 공존하는 작품 세계

'위험한 가계', 따뜻한 성숙의 드라마 보여줘

"2000년대 등단 시인들, 전부 기형도 읽으며 詩공부"

고(故) 기형도 시인고(故) 기형도 시인


“고(故) 기형도 시인의 작품 세계에는 세상을 다 살아버린 듯한 자의 절망과 탄식, 그리고 삶의 따뜻한 온기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29세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 시인 기형도(1960~1989)의 29주기를 기념하는 추모 행사가 지난 10일 오후 경기 광명의 기형도문학관에서 열렸다. 이날 유희경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패널들은 기형도의 작품 세계를 ‘양면성’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했다.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입속의 검은 잎’과 ‘안개’ 등의 작품을 예로 들며 “기형도는 생물학적으로 청년의 나이였음에도 이미 늙음과 소멸, 죽음을 자신만의 시어(詩語)로 구체화한 ‘묵시록의 작가’였다”며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지만 기형도는 그 밑에 숨어 있는 정치적 억압과 여기에서 비롯된 죽음을 간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반면 가난에 굴복하지 않는 성숙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작품인 ‘위험한 가계’는 우리네 생(生)을 반짝반짝 밝히는 별빛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면서 “기형도는 독자들에게 절망과 위안을 동시에 안기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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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조선대 교수인 나희덕 시인도 “세상의 고통을 절절하게 노래한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은 죽음의 기미(幾微)에 민감했던 청년 시인이 써내려 간 진혼곡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위험한 가계’는 서정시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따뜻한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이런 양면성이 지금까지도 기형도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폭넓게 읽히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유희경 시인은 “기형도의 작품들은 사회 참여를 지향하는 민중문학과 세련된 양식미를 기반으로 하는 모더니즘 계열 사이의 중간 지대에 놓여 있는 듯하다”는 분석을 곁들였다.

이날 대담에서는 후배 문인들에게 끼친 기형도 시인의 엄청난 영향력도 재조명됐다. 나희덕 시인은 “이전 세대의 문인들은 보통 시를 공부한다고 하면 김소월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이후에 등단한 시인들은 가장 먼저 기형도를 거론한다”며 “그들에게 기형도는 가장 중요한 문학적 기원이나 다름없다”고 소개했다.

한편 기형도 시인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부터 중앙일보 정치부·문화부·편집부 기자로 일했으며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인으로 활동했다. 1989년 3월7일 종로의 한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광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지난 10일 기형도 시인의 29주기를 기념하는 추모 행사가 열린 경기도 광명의 기형도문학관에서 유희경(왼쪽부터) 시인과 나희덕 시인, 유성호 평론가가 기형도의 작품 세계를 놓고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형도문학관지난 10일 기형도 시인의 29주기를 기념하는 추모 행사가 열린 경기도 광명의 기형도문학관에서 유희경(왼쪽부터) 시인과 나희덕 시인, 유성호 평론가가 기형도의 작품 세계를 놓고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형도문학관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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