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여명] 실패한 당국, 실패한 금융

김홍길 금융부장

준비없이 시작한 지배구조 개선

투박한 관치로 시장서 역풍만

당국-금융사 갈등에 최흥식 사퇴

경쟁력 대신 혼란만 가중 "참담"



지난 2014년 KB금융은 내홍을 치렀다. 전산시스템 기종 선정을 놓고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충돌한 것이다. 금감원의 검사가 이어졌고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먼저 물러났다. 임영록 KB금융 회장도 뒤를 이었다.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사태 책임을 물어 임 회장의 사퇴를 압박한 결과다. 신 전 위원장은 최근 사석에서 “당시 임 회장이 물러나지 않았으면 나 자신도 (금융위원장으로서) 일을 못 했을 뻔했다”며 긴박했던 당시를 회고했다고 한다. 임 회장이 물러나서 다행이지 신 위원장의 압박에도 끝까지 버텼다면 신 위원장이 먼저 옷을 벗고 나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부터 금융지주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아 왔다. 사실상 연임을 앞둔 몇몇 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반대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금융지주들은 주주와 이사회가 결정해야 하는 일에 당국이 간섭한다며 반발했다. 당국은 ‘아마추어 관치’ ‘투박한 관치’라는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최 위원장의 운신의 폭이 좁아 들자 이번에는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나섰다. 금감원이 금융지주에다 차기 회장 후보 선임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실패했다. 굴욕이었다. 최 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그 사람들이 (당국의) 권위를 인정 안 하는 것”이라며 되레 시장을 원망했다. 시장은 다시 “금감원장이 할 소리냐”고 맞받았다. 그러고도 당국은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KB금융 회장 연임을 막지 못했고 하나금융도 오는 23일 주총에서 회장 연임 확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당국 내부나 시장에서는 애초부터 싸움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많다. 전략도, 충분한 준비도 없이 의욕만 갖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당국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 회장은 사석에서 “한때 사외이사가 너무 권력이 강해져 경영진이 포위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당국이)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 최고경영자(CEO)가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들어간 건데 (당국 수장이 새로 오고 나서) 어느 날 갑자기 CEO가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며 “(당국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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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에 문제가 있었다면 당국이 검사를 통해 확보한 ‘중대한 혐의’를 공개하고 책임을 물으면 됐는데 확실한 물증 없이 시작을 해 난마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했을지 모르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오판이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이 투자자나 시장에 그대로 노출돼 있고 내부적으로도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다 보니 금감원이 검사를 나가도 (회장과 은행장을 교체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렵다”며 CEO 견제가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국제금융 분야에서 커 온 최 위원장이 상대적으로 국내 금융회사의 세밀한 부분을 잘 몰랐던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직 금융관료는 사견을 전제로 “지배구조 문제를 건드려 회장 연임을 못 하게 하려 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정교하게 접근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당국이 금융사를 상대로 한 ‘지배구조 전쟁’은 과거와 같은 권위와 영이 많이 옅어진 상황에서 ‘물(水)당국’을 재촉하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국과 금융지주는 사생결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례가 없다. 이런 와중에 최 원장이 2013년 하나은행 채용에 관여했다는 폭로가 나왔고 이틀 만인 12일 최 원장이 전격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구체적인 배경은 둘째치고라도 당국과 금융사 간 뿌리 깊은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전직 금융관료는 “참담하다”고 했다. 금융권이 마치 정치판을 닮아가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 금융회사의 CEO는 “급변하는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경영에 더 몰입해야 하는데 우리만 이런 상황이니 답답하다”고 했다. 당국도 실패했고 금융도 실패했다.

/what@sedaily.com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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