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정치인 홍종학 vs 장관 홍종학

정민정 성장기업부 차장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인천 싸전 아들 출신이다. 어릴 적부터 ‘돈도 백도 없는’ 장사꾼의 설움을 지켜봤고 쌀집 자식으로 쌀밥 먹는 자의 겸손도 배웠다고 한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는 “늦은 오후 봉지 쌀을 사 갖고 비탈길을 올라가는 아낙네의 굽은 등에 업힌 하루를 잊은 적이 없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맥주 시장에서 중소규모 업체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맥주법(주세법 개정안)’을 주도했고 앞서 지난 2011년에는 면세점 특허 기간을 종전의 10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이슈만큼은 누구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고 을지로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을’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한 만큼 중소기업계가 갖는 기대는 컸다.

세간의 관심과 기대를 잘 알고 있는 그는 취임 일성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중소기업·벤처기업의 대변인이자 진정한 ‘수호자’가 되겠다”며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홍 장관을 만나려면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민 행보에도 열심이었다. 새해부터 서울 신원시장을 방문해 전통시장 안전점검에 나섰고 창신동을 찾아 의류 제조 소공인들을 만났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일자리안정자금 홍보에 뛰어들었다. 일자리안정자금만큼은 중기부가 국정홍보처 역할을 맡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신임 장관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현장을 찾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만 못하다. 시장 상인이나 공장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모습에서는 ‘장관 홍종학’이 아닌 ‘정치인 홍종학’이 읽힌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중기부는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힌 정책 이슈가 산재해 있고 이는 ‘정치인 홍종학’이 아닌 ‘장관 홍종학’이 정무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최선의 답을 찾는 조직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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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새 장관이 오면 부처 현황과 주요 사업, 산하기관 업무 등을 파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홍 장관은 12곳의 산하기관 중에서 아직도 업무 보고를 받지 않은 곳이 상당수다. 이미 장관 보고를 마친 산하기관에서도 불만이 나왔다. 장관의 현장 행보가 민생을 함께 챙겨야 할 해당 기관이 빠진 채 진행되다 보니 지시가 내려와도 그게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중기부 내부에서도 장관과의 소통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거대한 관료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관료 조직의 속성과 생리를 잘 알아야 한다. 마차를 끄는 마부가 자신이 부리는 말의 성격과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행정 경험 유무가 리더를 뽑을 때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로 꼽힌다. 홍 장관은 중기부가 가야 할 목적지를 잘 알고 있는 마부다. 하지만 말과 교감하면서 몰아야 제대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법이다.

그는 중기부 직원들과의 첫 만남에서 “매일 혁신을 거듭하는, 벤처 정신을 구현하는 부서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제는 그 자신이 ‘정치인 홍종학’의 딱지를 떼고 중기부 수장으로 거듭나기 위한 ‘벤처 정신’을 요구받고 있다.

/jminj@sedaily.com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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