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스티븐 호킹 타계] 55년 시한부 인생 이겨내며…호킹 복사 법칙으로 새지평 열어

"블랙홀 물체 빨아들이고 빛도 방출"

블랙홀에 대한 기존 이론 뒤집어

노벨상 못 받아도 큰 영예·인기 누려

한국엔 두번 방문…DJ 만나기도




‘현대 과학의 아이콘.’

14일(현지시간) 영국에서 별세한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일컫는 말이다. 루게릭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블랙홀과 관련한 우주론과 양자중력 연구에서 탁월한 학문적 성취를 이룬 불굴의 삶에 전 세계 과학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직접 실험을 통해 검증하기 힘든 이론물리학이 전공이기 때문에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어떤 과학자보다도 큰 영예와 인기를 누렸다.

호킹 박사의 가장 큰 과학적 업적은 블랙홀에서의 양자복사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지난 1972년부터 러시아 물리학자 야코프 젤도비치,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킵 손 등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호킹 박사는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을 부분적으로 결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양자역학적 효과를 고려하면 회전하는 블랙홀이 입자를 생성하고 방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그는 1975년 빅뱅(대폭발)으로 생겨난 블랙홀이 모든 물체를 빨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방출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현상을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로 부른다. 소광섭 서울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기존에는 블랙홀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서 다시 나오지 않는다는 게 상식이었으나 양자장론의 관점에서는 블랙홀에서도 빛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호킹 박사는 블랙홀이 서서히 입자를 방출하다 결국 증발해버리고 이때 블랙홀이 빨아들인 물질의 정보는 나오지 못한 채 블랙홀과 함께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입자와 입자가 상호작용을 통해 흡수, 붕괴돼도 정보 손실은 있을 수 없다’는 양자역학의 기본원리에는 반하기 때문에 이 같은 ‘정보 역설(information paradox)’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오랜 논쟁거리였다. 호킹 박사는 2004년 과거의 오류를 인정하고 자신의 기존 주장을 180도 뒤집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정보가 방출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해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일부 오류를 인정했지만 블랙홀에서 복사에너지가 방출된다는 ‘호킹 복사’ 이론의 근간은 크게 훼손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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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박사는 1980년대 들어 우주에 시작과 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제임스 하틀과 함께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하틀-호킹 상태’라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들의 이론에 의하면 특이점(singularity) 같은 한 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한 점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은 경계가 없는 양자적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기존 이론에서 우주는 무한히 오래됐거나 빅뱅처럼 특이점에서 출발한 것으로 간주됐다.

호킹 박사는 21세기 들어서도 꾸준히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며 왕성한 연구 욕구를 드러냈다. 그는 2015년에 가진 한 대중 강연에서 “블랙홀에 물체가 빨려 들어갈 때 물체의 정보(양성자 수 등 물리량)는 블랙홀 내부가 아니라 블랙홀의 경계선인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 저장된다”고 주장했다. 호킹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의 지평선 안쪽으로 들어온 물체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입자들이 사건의 지평선에 정보 흔적을 남긴다. 이곳에 저장된 정보들은 이후 블랙홀이 반입자는 빨아들이고 입자는 서서히 방출하는 ‘호킹 복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입자와 함께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 정보는 블랙홀 가장자리에서 일종의 홀로그램 상태로 변형되거나 다른 우주로 나오게 된다. 다만 정보가 혼란스럽고 쓸모없는 상태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다 타버려 재만 남은 백과사전처럼 정보의 기능은 이미 모두 사라진 뒤라는 게 호킹 박사의 설명이다.

스티븐 호킹(오른쪽) 박사가 지난 2000년 방한,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중(왼쪽)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스티븐 호킹(오른쪽) 박사가 지난 2000년 방한,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중(왼쪽)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호킹 박사는 생전에 두 차례 방한했다. 1990년 9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초청으로 방한해 서울대와 신라호텔에서 ‘우주의 기원’과 ‘블랙홀과 아기우주’를 주제로 강연했다. 2000년 8월 말에 한국을 다시 찾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만나고 청와대에서 ‘간략히 살펴본 우주’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또 서울대와 고등과학원이 제주에서 공동 주최한 ‘세계 우주과학학술대회’에 참가해 ‘3차원 이상의 새로운 공간에 관한 우주론’에 관한 특별강연을 했다.

성행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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