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속 ‘무(無)’의 공간에는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있을까. 움직이는 몸, 몸이 내는 소리, 소리로 감각하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장애인 예술공연단체 마크브루컴퍼니를 이끄는 마크 브루와 한국 무용계 블루칩 김보라가 안무하고 출연하는 신작 ‘공공제로(공·空·Zero)’는 몸·시간·공간의 개념을 남자와 여자, 장애와 비장애, 영국인과 한국인 등으로 구분되는 두 몸을 통해 탐구한다. 하반신이 마비된 마크 브루는 휠체어를 두 다리 삼아 자유로운 몸의 미학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몸은 무의 세계를 감각하는 몸으로 출발해 얽히고 대화하고 갈등하는 사회적 몸으로 나아간다.
장애인 무용수와 비장애인 무용수가 한 무대에 올라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무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안무가 안은미, 장애·비장애 무용수가 함께 활동하는 세계적인 무용단체 칸두코댄스컴퍼니가 협업한 ‘굿모닝 에브리바디’다. 팔이나 다리가 없는 무용수,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나 의자 위에서 상체 위주의 동작을 소화하는 무용수 등 7명의 무용수가 무대 위를 누비며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인체의 대화를 보여준다. 안은미는 “사회적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장애로 가득한 사회에서 매일을 잘 버텨내고 있는지, 무사한지 묻고 싶었다”고 한다.
17~18일 각각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과 대극장에서 공연한 두 작품은 이달 말 종료를 앞둔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 한국 내 영국의 해’ 폐막행사이자 평창동계올림픽 문화올림픽 프로그램으로 한국과 영국 아티스트들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참가 예술인들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장애든, 비장애든 인간의 몸은 저마다의 경험 속에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뿜어낼 수 있다”며 “관객들 역시 낯선 몸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트프로젝트보라의 김보라 예술감독은 “장애 예술인과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서로 다른 몸으로 성찰하듯 대화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다”며 “다름 속에 존재하는 같음, 다름은 사실 새로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고 되돌아봤다.
‘굿모닝 에브리바디’를 안무한 안은미 역시 시각장애인과 함께한 ‘안심땐스’, 저신장장애인 무용수와 함께한 ‘대심땐스’ 등으로 다른 인체의 미학을 탐구해온 안무가다. 안은미는 “한 가지 종류의 장애를 지닌 무용수들과 협업한 과거 작품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7명의 서로 다른 장애를 지닌 무용수들과 대화하며 작품을 발전시켜나간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영국문화원은 앞으로도 ‘다양성’과 ‘포용’을 키워드로 양국 예술인들의 교류를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마틴 프라이어 주한 영국문화원 원장은 “1년간 500여명의 양국 예술가들이 교류하고 180여개 문화행사를 통해 소통에 나섰다”며 “한영 상호교류의 해는 비록 막을 내리지만 앞으로도 다양한 예술교류의 장이 펼쳐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