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눈물 머금고 수천억 매출 포기…한국산 철강 '철수 도미노'오나

['관세폭탄' 동국제강, 美수출 전면중단]

잇단 고율 관세에 25% 추가 땐 가격경쟁력 상실

생산공장 옮기려해도 신뢰성 검증에만 수 년 걸려

美 보호주의 확산에 해외시장 개척도 여의치 않아

지난 1월 동국제강이 비상대책위를 가동했다. 미국 상무부가 수입산 철강재에 고율의 관세를 추가 부과할 수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었다. 현지에서 주문받은 물량을 생산한 뒤 배에 실어 보내기까지 세 달이 넘게 걸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월께 최종서명을 할 가능성이 높아 지금 생산한 물량이 미 항구에 도착하는 3~4월께부터 고율의 보복관세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

비대위 결과는 암담했다. 한국에서 수출하는 아연도금강판은 지난해 기준 톤당 910달러다. 현지에서 아연도금강판 가격이 990달러 수준에서 형성돼 미약하나마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25% 추가관세가 부과되면 한국산 아연도금강판은 1,14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 하반기 아연도금강판에 대한 연례재심에서 고율의 보복관세가 추가 부과될 가능성도 있는 상태였다. 연간 1,300억원의 물량을 수출하던 미국 시장에서 미국 시장에서 당분간 발길을 돌리기로 한 이유다.

1615A13 대미철강수출



동국제강이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즈음 다른 철강업체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국이 뱁새눈을 치켜뜨고 보는 강관업체에는 비상이 걸렸다. 미국이 급증하는 한국산 유정용 강관과 송유관을 저격해 최대 47%의 보복관세를 매겨둔 상황에서 또 다른 악재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중소 강관업체인 휴스틸은 지난달 대미 수출용 강관 생산라인 전원을 껐다. 25% 추가관세를 반영해 제품가를 다시 산정하면 현지 수요가 급감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미 최근 연례재심 예비판정에서 이전보다 3.42%포인트 높은 19.68%의 관세를 맞은 상태였다. 여기에 25% 관세가 더해지면 관세율은 44.68%에 이른다. 수출가격이 1,302달러까지 급등하게 되는 것이다. 현지 시장 가격이 1,000달러 수준에서 이뤄진 만큼 상당수 수요 업체가 등을 돌릴 게 불 보듯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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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는 미국 시장의 복귀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수입산 물량에 대한 초과 관세 부과 시행을 수일 앞둔 가운데 ‘감형’을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간 정부 협상단만 쳐다보는 상황에서 잠정 면제 판정을 받은 캐나다나 멕시코처럼 완전 ‘국가 제외’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해외시장을 개척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다. 수요 업체들이 공급자를 선택할 때 보수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들여왔다가 계약금액만 수조원에 달하는 플랜트 공사를 망친다고 생각해보라”며 “수요 업체들은 시장가를 크게 웃도는 가격이 아니면 기존 업체에서 물량을 받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을 뚫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나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공세 탓에 각국이 외국산 물량에 연이어 빗장을 걸어둘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미국으로 보내지 못한 물량을 자국에서 소화하기 위해 외국산 철강재에 고강도 관세를 매기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넥스틸 등 일부 업체는 관세를 피해 아예 미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제조에 필요한 소재를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이 경우 가공 제품의 특성도 바뀐다는 점이다. 현지에서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소재가 달라지기 때문에 품질과 안정성을 다시 인정받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지를 바꾸면 조달 업체와 생산공정이 모두 바뀐다”며 “국내에서 품질을 인정받은 ‘빅 3’ 업체라도 납품업체에서 현지 생산법인에 대한 신뢰성을 검증받는 데 수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결국 현지에서 가격이 조정되기만을 기다려야 할 처지라고 토로한다. 미국 현지 조강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만큼 기다리다 보면 현지 철강재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공급 부족으로 현지 철강 가격이 오르면 관세를 물고 들어가더라도 경쟁해볼 만할 것”이라면서도 “대미 수출 1·4위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이미 제재망을 빠져나간 상황이라 가격 조정이 급작스레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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