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그린란드 툴레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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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냉전 시절 미국의 전략폭격기들은 핵폭탄을 탑재하고 북극 상공을 24시간 교대로 비행했다. 주력은 전략폭격기의 끝판왕 B-52. 1950년대 중반 실전에 배치된 B-52에 부여된 임무는 대소련 보복 공격이다.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을 향해 핵 단추를 누르면 지체 없이 소련 영공으로 진입해 핵폭탄을 투하해 응징한다는 개념이다.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열세를 전략폭격기와 전략핵잠수함을 통해 만회했다. 미국과 소련은 그렇게 공포의 핵 균형을 이뤘다.


1968년 1월 작전 수행 후 그린란드 소재 미 공군기지인 툴레로 귀환하던 B-52에 참사가 발생했다. 원인 모를 기내 화재로 툴레 기지 인근 얼어붙은 바다에 추락했던 것이다. 기내에는 수소폭탄 4기가 탑재된 이른바 ‘브로큰 애로(부러진 화살·broken arrow)’ 상황. 당시 미국은 핵폭탄을 안전하게 회수하고 방사능 오염도 없다고 발표했으나 훗날 공개된 기밀문서에는 바닷속에 가라앉은 폭탄 4개 중 1개를 미처 수거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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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레 미 공군기지는 전형적인 냉전 시대의 유물이다. 그리스어로 ‘북극의 땅’이라는 뜻의 툴레는 그린란드 원주민인 이누이트 마을이었으나 1953년 지금의 군사기지로 변했다. 미국이 동토의 땅을 군사 기지화한 것은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모스크바까지는 불과 3,60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전략폭격기 운용에는 최적지였다. 이곳에는 한때 그린란드 전체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1만명의 미군과 군무원 등이 상주했다. 미국이 기지 완공 후 이듬해 설치한 높이 378m의 통신탑은 당시 인공구조물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았다고 한다. 지금도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의 요충지 역할을 한다.

다음달 그린란드 자치의회 선거를 앞두고 미국이 바짝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덴마크 분리독립 요구가 선거 이슈로 부상해서다. 14세기 이후 덴마크의 지배를 받아온 그린란드는 외교·국방 외 일체의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원주민을 중심으로 분리독립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툴레 기지 보수회사가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원주민을 더 자극했다. 인구 6만명도 채 안 되는 그린란드의 정치지형에 어떤 변화가 올지 주목되고 있다. /권구찬 논설위원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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