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서경이 만난 사람] 박태호 효성 이사회 의장 "효성, 한우물 파는 견실한 기업...치고 나갈 힘이 있다"

[박태호 효성 신임 이사회 의장 <前 통상교섭본부장>]

스판덱스·타이어코드 세계 1위...석유화학·변압기 기술력도 탄탄

제조업만 하는 기업 흔치 않은데 오너 갈등 등 법적 이슈에 묻혀

美 통상압박 피하려면 對中 중간재 거래 줄여 공격 빌미 없애야

G2 강대강 무역전쟁은 공멸...WTO 국제규범 내서 문제 해결을




/대담=김능현 경제부 차장 nhkimchn@sedaily.com

창립된 지 50년이 넘은 효성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 효성은 이달 초 조현준 회장이 이사회 의장에서 사퇴하고 이 자리를 외부에 넘기기로 했다. 회사 이사회 의장을 오너 일가 등이 아닌 외부에서 맡는 것은 지난 1966년 창사 이후 처음이다. 새로운 의장은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이 맡았다.


25일 서울 중구에 있는 광장 사무실에서 만난 박 신임 의장은 ‘어깨가 무겁다’ 등 의례적인 소감은 건너뛰고 “효성은 위로 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2015년부터 효성 사외이사를 맡아 회사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왔다. 3년간 경험한 결과 박 의장이 내린 결론은 ‘회사 경쟁력이 밖에서 보는 것보다 탄탄하다’는 것이다.

박 의장은 “효성은 섬유·산업소재 분야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에서 세계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고 석유화학·변압기 등의 분야도 국제경쟁력이 있다”며 “효성처럼 제조업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기업도 흔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오너 일가의 갈등, 검찰·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수사가 계속 불거져 발목을 잡히고 있다”고 진단했다. 효성이 2016년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기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도 법적 이슈에 묻힌 감이 있다는 얘기다.

박 의장은 “이사회 의장으로서 경영 투명성을 강화해 불필요한 리스크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의견을 청취해 이사회가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통상에 오래 몸담았던 경험을 살려 효성의 제조업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도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박 의장은 2012~2013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통상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중국산 수입품 500억달러(약 54조원) 상당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본격 선포했다. 미국은 철강·가전제품 등 수출국에 대해서도 관세 폭탄을 잇따라 내리고 있어 한국의 피해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박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은 최소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때까지는 계속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최근 중국이 주된 타깃이라는 점을 좀 더 명확히 했지만 한국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하고 우리 자체도 대미 흑자가 커 미국의 공세와 그로 인한 피해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주요 피해 품목도 철강·가전제품 외 다른 품목까지 확산될 여지가 있다.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미국에 안보동맹국임을 강조하는 외교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공격당할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일 시급한 과제로 중국과의 ‘중간재’ 거래를 줄이는 것을 꼽았다. 한국은 완성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이나 소재를 뜻하는 중간재를 중국에 많이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대(對)중국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은 78.9%에 이른다. 미국은 이런 중간재 거래 때문에 한국이 중국의 막대한 대미(對美) 흑자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 의장은 “중간재가 아닌 소비재 수출을 늘리면 중국의 대미 흑자와 한국의 연관성이 약해질 뿐 아니라 중국의 수출 감소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줄일 수 있다”고 짚었다. 또 “중국은 여전히 6%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나라인 만큼 중국의 내수를 잘 공략하는 것은 한국 수출의 살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수입 역시 마찬가지다. 철강의 경우 한국은 중국산 수입국 1위인데 이 점을 조정하지 않으면 미국의 공세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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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또 다른 통상 압박 카드인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련해서도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하루빨리 공개해 꼬투리 잡힐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입 내역을 공개하면 환율을 조작한다는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고 조작국 지정 리스크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일본, 유럽연합(EU), 호주 등 선진국과 달리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야 공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에의 공세를 강화하며 다른 나라들에도 중국을 압박하는 데 동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위 중국에 대한 ‘무역연합군’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박 의장은 이에 대해 “실효성도 없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부 품목에서 중국의 과잉생산과 덤핑에 피해를 보는 나라들도 다른 품목에서는 중국이 필요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섣불리 공조를 했다가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무역연합군 결성은 사실상 어려울 겁니다. 과거 미국과 EU가 중국을 견제하려고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을 구성하려 했지만 실패한 전례도 있지 않습니까.”

박 의장은 강대강으로 치닫는 무역보복은 공멸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1930년대 미국이 경제위기를 막으려고 2만여개 수입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홀리법’을 제정하자 영국·프랑스 등이 보복관세로 맞섰고 세계 경제 전체가 고꾸라지는 대공황으로 이어졌다”며 “지금도 상황이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공멸을 막으려면 세계 각국이 세계무역기구(WTO)로 대표되는 국제규범 안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조언도 건넸다. ‘미국이 WTO 체제를 공공연히 무시하고 있어 사실상 무력화된 것 아니냐’고 묻자 “WTO 질서가 약해진 것은 맞지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 의장은 “현재 WTO 내 분쟁해결기구의 상소위원 상당수가 공석인데 미국이 위원 선임을 막고 있다”며 “미국도 WTO 판정이 갖는 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세계 각국이 합심해 WTO의 위상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WTO의 의사결정 과정이라든지 복수국가 간 무역협정을 불허하는 관행 등을 개혁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호주·캐나다·칠레 등 11개 국가가 뭉친 다자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관련해서는 한국도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박 의장의 생각이다. 메가FTA로도 불리는 TPP는 결성을 주도하던 미국이 트럼프 정부 들어 발을 빼면서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올 들어 일본 주도로 급물살을 탔고 이달 8일 출범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미국도 TPP 복귀 검토 의사를 밝혀 한국만 소외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 의장은 “TPP는 전략적으로 여러 의미가 있다”며 “참여국 11개 국가 중 FTA를 맺지 않는 일본·멕시코와 자유무역 거래를 할 수 있는 효과가 있고 미국이 재가입할 경우 영향력이 배가되는 만큼 가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리=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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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부산 △1975년 서울대 경제학 학사 △1983년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1983~1987년 미국 조지타운대 경제학과 조교수 △1989~1994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1994~1997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1997~2001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02~2003년 서울대 국제지역원 원장 △2004년 미국 스탠퍼드대 방문교수 △2005년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2006년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 △2007년 지식경제부 무역위원회 위원장 △2012~2013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 △2017년~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 △2018년~ 효성 이사회 의장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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