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갈길 먼 K아트]유작으로 상속세 낸 피카소家... 세금탓 소송 휘말린 김흥수 유족

(중)미술시장 육성과 동떨어진 세제·금융

韓 기부 세액공제 최대 30%...佛 66%·英 125%와 대조

미술품 구입 손금인정 한도 상향·미술금융 양성화도 시급

자산가치 객관적으로 측정할 가이드라인 먼저 만들어야

#구상과 추상을 섞은 ‘하모니즘 회화’의 창시자로 유명한 서양화가 김흥수(1919~2014) 화백의 유작 70여점의 운명은 기구하다. 43세 연하의 부인 장수현 씨가 2012년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듬해 김흥수미술관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자 김화백의 대리인이 알고 지내던 불교재단에 작품들을 맡긴다. 그러나 그림이 방치된 사실을 안 김 화백이 반환 소송을 제기한 지 4개월만에 타계했고, 장남이 나서 승소해 작품을 되찾지만 국세청 추산 110억원대 유작에 대한 상속세 48억원을 내야했다. 세금 때문에 작품을 팔아 흩어지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아들은 유작 전체를 ‘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한 재단에 기증했으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지난해 말 또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던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세상을 떠나자 상속인들은 엄청난 작품을 물려받은 대신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물게 됐다. 프랑스 정부는 세금을 대신하는 기증제도인 ‘대물변제(Dation)’를 통해 회화 203점, 조각 158점 등 다량의 피카소 작품을 받았다. 이후 정부는 파리 마레지구의 17세기 저택을 지정해 1985년 피카소미술관을 개관했고 상당한 관광수익을 거두고 있다. 이후 피카소의 다른 상속인들의 세금물납, 선의의 기증이 더해져 가장 풍성한 피카소 컬렉션을 자랑한다.

미술품은 ‘사유(私有)할 수 있는 예술’로 돈과 무관할 수 없다. K아트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미술시장에 작품과 돈이 동시에 원활하게 돌아야 한다.


특히 미술품 유통 분야에 대한 논의에서는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는 분야가 바로 ‘세금’이다. 세제혜택이 개인·법인의 미술품 구입을 독려할 뿐 아니라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대한 기부를 활발하게 해 그림 유통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세금 대신 그림을 낼 수 있게 하는 ‘상속세 물납제’가 그중 하나다. 예술품이 갖는 무형의 잠재가치까지 고려한다면 ‘돈’보다 나을 수도 있다. 미술품 기부 세제혜택의 경우 개인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한 법정기부, 정부가 허가한 문화예술단체와 박물관·미술관에 지정기부할 경우 금액의 15%(2,000만원 초과는 30%)를 세액공제 해 준다. 반면 프랑스는 미술품 기부의 경우 과세소득의 20% 한도에서 개인은 66% 세액공제, 법인은 매출액 0.5% 한도에서 60% 세액공제를 해 준다. 영국은 기부금액에 일정 비율을 더 얹어 125%까지 기부액을 인정한다. 기부문화가 뿌리내린 미국의 휘트니미술관은 전체 수입의 99%,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70% 이상이 기부와 기증으로 운영된다.

세제 개선이 미술품 구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현행 500만원인 미술품 구입 손금한도도 인상이 요구된다. 양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에서 거래되는 경매낙찰작 평균가가 3,500만원대 임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말 진행된 ‘미술정책 종합토론회’ 등에서는 법인의 문화접대비 항목으로 500만원 이하의 소액미술품을 추가해 미술품 거래를 확대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수익성·거래 등을 고려한 고가의 작품이 아닌 신진작가 육성 차원에서의 소액미술품을 거래할 경우 작가는 물론 소규모 화랑도 힘을 얻게 된다.

‘미술금융’의 양성화 및 활성화도 요구된다. ‘미술품은 고가’라는 인식이 팽배해있지만, 정작 미술품은 환금성이 낮다. 당장 현금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기에 그림뿐인 작가가 생계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그림 소장가가 자금이 필요할 때는 ‘미술품 담보대출’을 모색한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케이아트론)이 경매 가능한 미술작품을 대상으로 연이율 12% 수준에 담보대출을 제공한다. 서울옥션의 담보대출 비중은 연매출 541억원(2017년기준)의 1.1% 수준이다. 이들은 경매회사이기 때문에 미술품 가격 산정이 가능하다.

즉 세제혜택과 금융활성화를 위한 전제 조건은 미술품의 자산가치 측정이다. 미술품의 진위감정도 중요하지만 가격감정이 절실한 반면 국내에는 권위있는 미술품 가격감정기구가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공개시장인 경매거래가 기준이 될 수는 있으나 한국예술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전체작가의 상위 10% 정도가 경매시장에서 거래된다. 대부분 작가의 가격은 측정이 모호하다. 미술품 가격 감정기구로 미술거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민간기구인 화랑협회 등이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이 위탁운영 중인 정부미술은행도 유리하다. 미술은행은 미술품 구입과 함께 정부 자산인 미술품을 대여해 전시하는 등 작품관리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조상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