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갈길 먼 K아트] 롯폰기 '마망' 도쿄 상징 됐는데...'슈즈트리'로 악취만 풍긴 서울역

<하>누구를 위한 공공미술인가

건축비 1% 미술작품 설치 의무화

미술거래액의 10%인 400억 육박

브로커 통해 '페이백·꺾기' 횡행

자기복제 작품들도 많아 '불량화'

제도 손질·엄정한 관리감독 필요

독일 소도시 뮌스터의 공원에 설치된 클라스 올덴버그의 설치 작품. 커다란 둥근 공모양의 작품에는 ‘예술은 뭘까’를 묻는 지역민의 낙서도 볼 수 있다. /뮌스터=조상인기자독일 소도시 뮌스터의 공원에 설치된 클라스 올덴버그의 설치 작품. 커다란 둥근 공모양의 작품에는 ‘예술은 뭘까’를 묻는 지역민의 낙서도 볼 수 있다. /뮌스터=조상인기자



#지난해 5월 서울역 앞에 공공미술 작품 ‘슈즈트리’가 설치되자 비난이 잇따랐다. 1억4,000만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은 ‘악취 나는 신발폭포’라는 악평 속에 조기 철수됐다.

#설치미술의 대가인 미국작가 데니스 오펜하임(1938~2011)이 부산비엔날레의 의뢰로 2010년 해운대해수욕장 만남의 광장 부근에 세운 ‘꽃의 내부’를 해운대구청 관광시설관리사업소가 지난 1월 철거·폐기했다. 예산 8억원이 투입된 것이었으나 지역민원 등을 이유로 없앴다. 작가 유족 측에도 알리지 않은 이 불법 공공미술 파괴행위는 외신에도 크게 보도됐고 이후 구청 측은 재설치를 검토 중이다.

서울로 7017에 설치된 ‘슈즈트리’/연합뉴스서울로 7017에 설치된 ‘슈즈트리’/연합뉴스


공공미술(Public Art)은 말 그대로 공공장소에 놓인 미술을 가리킨다. 1967년 존 윌렛이 ‘도시 속의 미술’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로 도시문화 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를 품고 있다. 뉴욕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도쿄를 롯폰기힐스 앞에 세워진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모양 조형물 ‘마망’으로 추억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힘이다. 독일의 소도시 뮌스터는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공공미술축제인 ‘뮌스터프로젝트’로 전세계인을 끌어모은다.


그러나 해외 유명도시의 공공미술을 동경하면서도 정작 국내 상황에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미술작품 제작에 내 돈 들이기는 아까워하면서도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미술품이 다양한 취향과 안목을 두루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예술성이 높으면 대중적 이해가 어렵고 눈높이를 낮추다 보면 작품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내는 정부나 지자체 등의 기관이 공공이 사용하는 공간을 위해 공적기금을 투입해 조성하는 ‘공공미술’과 건축주 의무조항으로 개인 사유지에 조형물을 조성하는 ‘건축물 미술작품제도’로 크게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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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미술작품제도는 1만㎡ 이상 건축물은 건축비용의 1%를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게 한 의무 조항이다. 1972년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 내 ‘건축물 미술장식제도’가 1995년부터 의무규정이 돼 지금까지 1조1,700억원 규모의 작품 1만5,870여 점이 전국에 설치됐다. 미술을 장식으로 전락시킨 제도명에 대한 지적이 이어져 이후 ‘건축물 미술작품제도’로 명칭이 바뀐 이 공공조형물 시장은 연 평균 700억원대로 파악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최근 발표한 ‘미술시장실태조사’에서도 2016년 미술시장 전체 3,964억원 중 건축물 미술품은 368억원 규모 약 10%로 집계됐다.

198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때 설치된 다니엘 뷔랭의 ‘4번째 문’은 독일 소도시의 평범한 거리를 비범하게 바꿔놓았다. 공공미술의 힘이다. /뮌스터=조상인기자198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때 설치된 다니엘 뷔랭의 ‘4번째 문’은 독일 소도시의 평범한 거리를 비범하게 바꿔놓았다. 공공미술의 힘이다. /뮌스터=조상인기자


그러나 미술계 관계자들은 “이 분야를 6~7개 인테리어 업체가 소위 ‘브로커’시장을 형성했다”고 지적한다. 건축비의 1%를 미술작품 설치비용에 쓰지 않으면 당장 준공검사를 통과할 수 없는 건축주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브로커를 접촉하기에, 계약서상 금액을 부풀려 적고 돈을 되돌려 받는 ‘페이백’ ‘꺾기’ 등이 횡행한다. 이를 악용한 비자금 조성 등이 부작용을 낳는 실정이다. 업체와 연결된 일부 작가들이 ‘자기복제’ 하듯 유사한 작품을 곳곳에 설치하는 사례도 흔하다. 결국 예술성이 결여된 공공조형물로 인한 공공미술의 불량화는 지역 주민의 불만과 도시이미지 훼손 등의 악순환을 이룬다.

문제는 건축주의 사유재산을 공공성이라는 명분 하에 의무적으로 집행하게 하는 제도 자체에 있다. ‘공공미술, 도시를 그리다’의 저자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건축주도 의욕 없고 불만이지만 의무적으로 이행해야만 하는 ‘악법’인 만큼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면서 “해외 선진국은 공공조형물에 대한 엄정한 관리감독이 이뤄지고 지역민들의 의견도 반영되는데 우리는 준공검사 전 ‘사전심사 사후설치’ 방식으로 통과된 작품에 대한 사후 제재방법도 없는 등 관리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2011년부터 1%인 작품 설치금액의 70%, 즉 전체 건축비의 0.7%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기금 출연할 수 있게 한 선택적 기금제가 도입돼 129억원(153건)이 조성됐다. 장기적으로 건축물미술작품제도가 순수한 공적 의미의 공공미술로 전환돼야 하는 만큼 이 기금 집행이 첫걸음일 수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적립된 기금을 문화 소외지역인 지자체에 배분해 집행하는 방안 등을 고려중”이라며 “자칫 형평성과 지역불균형 문제, 지자체장의 치적사업으로의 전락, 지역예술계의 문화권력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방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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